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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자가격리’ 중인 공매도입니다 / 김수헌

등록 2021-01-24 17:26수정 2023-11-06 13:38

김수헌 ㅣ 경제팀장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오늘은 제 사연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 용기를 냈어요. 제 이름부터 알려드려야겠죠. 저는 공매도라고 합니다. 성은 공, 이름은 매도예요. 제 이름을 듣는 순간 뒷목 잡고 욕부터 내뱉는 분들도 계시겠죠. 요즘 활약이 대단하신 대한민국 개인투자자분들께 저는 사라져야 할 ‘금융 적폐’로 찍혀 있어요. 틈만 나면 매도 폭탄을 퍼부어 개미들의 피 같은 돈을 털어간다는 비난을 받아요.

저는 ‘자가격리’ 중이에요. 작년 3월 코로나19가 번지면서 주가가 폭락하자, 제가 주식시장을 더 불안하게 할까 봐 금융당국에서 6개월 동안 집 밖에 나오지 말라고 했죠. 예전 금융위기 때도 몇 달씩 이런 일을 겪은 터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네요. 기간이 6개월 연장된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최근엔 1년을 꼬박 채워도 집 밖으로 못 나갈 것 같은 싸~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저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원성이 워낙 크다 보니,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고민이 많은 모양입니다. 며칠 전엔 총리님까지 저를 저격하셨어요. ‘개인적 의견’이라고는 하셨지만, “그렇게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제게 눈을 흘기셨죠.

아 참, 저를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시죠. 사실 저에 대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좀 있어요. 이름 때문이기도 해요. 제 이름 공매도(空賣渡)의 한자 뜻은 ‘없는 걸 판다’는 거예요. 없는 주식을 어떻게 팔까요? 실제론 빌려와서 파는 거예요. 물론 없는 주식을 속이고 팔 수도 있는데(무차입공매도) 이는 불법이에요. 제 이름을 사칭한 악당들이 간혹 저지르는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름에 불만이 많아요. 정확히 이름을 짓자면 ‘차입매도’라고 하는 게 맞아요. 성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연예인들처럼 ‘차입매도’를 제 예명으로라도 쓰고 싶네요.

투자자들은 왜 저를 필요로 할까요? 한 투자자가 10만원인 ㄱ주식이 곧 8만원으로 떨어질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보죠. 주식이 있으면 팔겠죠. 그런데 주식이 없다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요. 누군가에게 이 주식을 빌려서 10만원에 팔고 8만원으로 주가가 떨어지면 되사서 주식을 갚으면 되겠죠. 어떤 주식의 가격이 분명히 올라갈 것 같은데 수중에 돈이 없을 경우 대출을 받아서 주식을 사는 것과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저를 활용하는 게 주식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제가 있기 때문에 주식이 고평가됐다고 판단하는 투자자도 돈 벌 기회가 있다고 보고 시장에 참여하겠죠. 만약 제가 없어서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시장에 넘쳐난다면 긍정적인 정보들만 가격에 반영돼 주가에 거품이 끼게 될 가능성이 커요. 거품은 언젠가 터지겠죠. 이건 제 ‘뇌피셜’이 아니에요. 저를 연구하는 수많은 교수님이 여러 실증분석 논문에서 밝혀낸 사실이에요. 미국에선 저를 활용한 투자자들이 회사의 거짓 정보나 회계사기를 밝혀내기도 했어요. 여러분들도 저를 주식시장에서 견제와 균형을 위해 필요한 ‘반대세력’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물론 제게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에요. 특히 한국에선 잘못된 제도 때문에 부작용이 부각돼요. 그래서 금융당국에 부탁드릴게요. 제가 자가격리된 동안 문제로 지적된 점들을 많이 손봤다고 들었어요. 혹시라도 미흡한 게 없나 한번 더 챙겨주세요. 그걸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면 자가격리 기간이 조금 늘어나는 건 감수할게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예전에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래요. 마오쩌둥 주석이 현지지도를 하다 곡식을 갉아먹는 참새를 보고 “해로운 새다”라고 한마디 했다네요. 이후 중국 전역에서 참새잡이 운동이 벌어져 참새가 사라졌대요. 그러자 참새를 천적으로 삼고 있던 해충들이 들끓어 농작물 피해는 되레 급증했고 많은 인민들이 굶어 죽었답니다. 저에 대한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서울대 이관휘 교수님이 이 얘기를 하시면서 저를 참새에 비유해주셨어요. 어떤가요, 꽤 그럴듯하지 않나요.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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