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당, 넘어짐, 미끄러짐, 헛딛음. 게티이미지뱅크
눈이 그쳤다는 소식에 식량을 확보하려고 집을 나섰다. 대학교 앞을 지나는데 방학 기간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궁금해서 둘러보니 면접이나 실기를 보러 온 수험생들 같았다. 스스로의 해답에 만족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비탈길의 눈을 밟고 미끄덩 몸이 넘어갔다. 보통은 당황하겠지만 나는 이런 일에 익숙했다. 주변의 놀란 시선이 쏠리는 걸 느끼면서, 넘어지기 직전에 허리를 위로 당겼다. 하지만 우둑! 뻣뻣하게 굳은 허리에서 소리가 났다. 꽈당 하고 뒤로 넘어갔다.
당해본 사람은 아실 것이다. 아픈 것도 괴롭지만 창피한 게 더 크다. 아주 잠깐, <러브 스토리>의 눈 천사 장면을 연기해볼까 했다. 하지만 아니다 싶어 허겁지겁 일어났다. 재빨리 골목길로 들어가 엉덩이의 통증을 달랬는데, 넘어진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반응이 평소와는 달랐다. 보통은 쓰러진 사람을 걱정하거나, 남의 실수에 몰래 웃을 텐데, 그들의 눈엔 불안이 가득했다. 검은 코트를 입고 나타나 수험생들 앞에서 미끄러진 남자에게서 불길함을 느꼈던 걸까?
대입 수험생, 취업 준비생,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 그들에게 세상은 싸늘한 빙판길이다. 작은 실수 하나로 미끄러졌는데 몇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다. 나는 소심한 글쟁이로 살아 크게 미끄러질 일이 없다고 여겼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몇년 동안 애써 써낸 책이 차가운 시장에서 곧바로 쓰러지고, 다음 책을 낼 때까지 버티게 해주던 작은 강의나 워크숍도 줄어들고, 그러다 보면 비탈길로 굴러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미끄덩의 두려움.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배울 때는 어떻게 해결할까?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버틸수록 중심을 잃게 되니 의도한 대로 미끄러지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말이 쉽지, 겁 많은 사람들은 부들부들 다리를 떨 뿐이다. 그런데 보호장구를 채워주면 달라진다. 얼음 위로 넘어져도 몸이 다치지 않으면 두려움을 통제하며 위험의 경계를 파악할 수 있다. 야구의 슬라이딩, 배구의 디그, 축구의 태클 등 어떤 스포츠에서는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운동선수들은 안 무서운가? 그럴 리가 없다. 자칫 그런 플레이로 선수 생명을 잃을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연습, 근력의 향상, 효과적인 낙법의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 삶에도 이러한 보호장비, 실패를 견뎌낼 연습이 가능하다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는 비탈길을 기어오르는 훈련만 할 뿐, 굴러떨어질 때 몸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이기는 연습보다 지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넘어지겠다 싶으면 힘을 빼고 머리와 같은 치명적인 부위를 보호해야 한다. 실패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특수한 아이템을 발견해서 챙길 줄도 알아야 한다.
로맨스 코미디의 대가 노라 에프런은 다큐멘터리 <에브리씽 이즈 카피>에서 말했다. “네가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지면 사람들이 너를 비웃겠지. 하지만 스스로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졌다고 고백하면 네가 웃을 수 있어. 그러니 농담의 희생양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라구.” 채플린, 서영춘, 꽈당 민정 같은 슬랩스틱의 예술가들은 우리에게 ‘삶의 실패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몸소 보여준다.
나는 실수와 실패를 작은 구슬처럼 수집한다. 사실 타격이 크고 부끄러운 것일수록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다. 당장은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무르익으면 웃으며 구슬을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상대도 자신의 구슬을 꺼내 보여준다. 그렇게 웃고 나면 서로의 구슬이 좀더 반짝이는 걸 보게 된다.
이명석 ㅣ 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