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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아무도 모른다 / 김소민

등록 2021-01-15 13:17수정 2021-01-16 16:52

김소민 ㅣ 자유기고가

# 2017년 6월 한 슈퍼마켓 주인이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18살 지은(가명)은 거스름돈을 계산할 줄 몰랐다. 학교에 가보지 못했다. 예방접종도 못 받았다. 한국인 부모는 10남매 중 4명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 2020년 11월 세살 지훈(가명)이는 온몸에 멍이 들고 장기가 일부 파열돼 치료받아야 했다. 아기는 국적이 없고 출생신고도 안 됐다. 치료비는 병원의 선의로 해결했지만 의료보험 가입도 안 되는 아이를 장기간 맡아주겠다고 나설 돌봄 시설을 찾기 힘들었다. 베트남 국적의 어머니는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됐다.

기사 속 아이들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생후 2개월 아기도 그랬다. 아동학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한국에서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국가가 아이의 존재를 알 길이 없다. 본국의 탄압을 피해 온 난민이나 신분이 드러나는 걸 꺼리는 미등록 체류 외국인 부모는 출생신고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자국 대사관에 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받아주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나. 이런 문제제기는 진부하다. ‘보편적 출생신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 지, 세상에 존재한다는 기록도 없이 죽고 다치는 아이들에 대한 기사들이 나온 지 적어도 10년은 됐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유엔아동권리협약 7조에 합치되도록, 부모의 법적 지위나 출신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게 출생 등록이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 게 2011년이다.

변할 가능성은 있다. 아이들 국적이 한국일 경우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국가기관에 알리는 ‘출생통보제’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짜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의료계는 개인정보 처리 문제가 있으며 부모와 국가의 의무를 병원에 떠넘긴다고 반발하고 있다. 출산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병원을 피해 아기를 낳고 유기하는 사례가 늘 거란 우려도 있다. 이 모든 ‘우려’들을 아이의 존재를 지울 수 있게 내버려두는 방식으로 해결하자는 이야기일까? 미혼모 낙인을 없애야 하는 거 아닌가? 혼자서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문제 아닌가? 병원의 행정적 부담 등을 해결할 제도를 마련해야 할 문제 아닌가? 10년 넘게 ‘시기상조’일까?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사정은 더 암울하다. 그나마 논의 중인 ‘출생통보제’ 대상은 한국인이다. 2014년 이자스민 의원이 낸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이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국적 주자고도 하지 않았다. 출생 등록하게 하고, 배우고, 치료받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이 1991년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대로다.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게시판에 악플이 1만5천개 달렸다. “불법 체류 천국을 만들려고 한다”는 그나마 예의를 갖춘 댓글이다. 인종주의가 날것 그대로 드러났다. 2018년 원혜영 의원이 외국인 아동의 출생사실도 등록할 수 있도록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된 채 사라졌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은 아파도 기록이 없어 약 하나 처방받기 힘들다. ‘어떤’ 아이는 국가가 방임한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러게 왜 한국에서 태어났냐고? 부모 국적 관계없이, 모든 아이의 출생 등록을 하도록 하는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태어나지 그랬냐고? 인구 절벽이라고 걱정하면서 정작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의 존재조차 지워버린 채 두자는 주장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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