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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서글픈 단식 투쟁 / 신승근

등록 2021-01-05 18:02수정 2021-01-06 02:39

1983년, 100번째 생일을 한달 앞둔 미국의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은 주변 사람들에게 단식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선언했다. 의식이 또렷할 때 자유의지로 생을 마치겠다는 그의 선택에 지인들은 당혹했지만 이제 많은 이들은 아름답고 당당한 임종의 대명사로 기억한다.

북아일랜드 감옥에 수감된 아일랜드 공화주의자 10명이 1980년 10월 영국 정부에 “범죄자가 아닌 양심수로 대우해 달라”며 단식을 시작했다. 53일 동안 단식을 이어갔지만 영국 정부는 무시했다. 이에 아일랜드 공화국군 지휘관 보비 샌즈를 비롯한 더 많은 이들이 1981년 길고 참혹한 2차 단식을 벌였다. 동시 단식을 펼친 1차 때와 달리 며칠 간격으로 참여자를 조금씩 늘리는 방식으로 217일 동안 단식은 계속됐다. 샌즈는 단식 중에 서민원(하원) 선거에 출마해 옥중 당선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범죄자에게 특수 지위를 적용할 생각이 없다”고 버텼고, 단식 66일 만에 샌즈는 사망했다. 1, 2차 단식 투쟁에서 10명이 죽음을 맞았다. 추모 집회와 ‘반영국 시위’가 이어졌고 아일랜드 민족주의는 불타올랐다. 역사는 ‘세기의 투쟁’으로 기록했다.

1980년 5월 신군부의 광주학살에 맞서 학생운동을 이끌다 체포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은 단식으로 항거했다. 감옥에서 세차례에 걸쳐 50일 동안 단식한 끝에 82년 죽음을 맞은 그는 전두환 정권의 폭압에 맞설 자양분이 됐다.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는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인 83년 5월18일 광주 영령 추모와 민주 회복을 내걸고 단식에 들어갔다. 23일 동안 단식을 지속하자 전두환은 민주 인사에 대한 가택연금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는 ‘지방자치제 실시’ 등 4개 항을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을 벌여 지방자치의 불씨를 살려냈다.

박근혜 정부에선 세월호 침몰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단식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열흘간 광화문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단식을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단식이 5일로 26일째를 맞았다.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에서 곡기를 끊고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외치는 이들을 지켜봐야 하는 현실은 참혹하고 서글프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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