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선희 ㅣ 경제부장
“코로나가 빨리 끝나서 예전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죠.”
ㄱ씨의 새해 소망도 대다수 사람과 다르지 않다. ㄱ씨는 서울 마포구에서 10평짜리 작은 주점을 운영한다. 코로나19 초기이던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8월 하순 2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11월 저녁 9시 영업시간 제한이 시행되고부터는 30%까지 줄었다. 1년 중 최고 대목인 12월은 최악의 한달이 됐다. 손님이 많아야 한두 테이블이고, 어떤 때는 한명도 없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7시30분 정도까지 손님이 오지 않으면 ‘아, 오늘은 끝났구나’ 생각하죠.” 예전엔 새벽 1~2시에 퇴근했지만 지금은 8시에 문을 닫기도 한다.
손님이 없다고 고정비용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대료 200만원은 꼬박꼬박 내야 하고 재료비와 각종 공과금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아르바이트생 두명은 결국 그만두게 했다. 아직까진 저축을 헐어서 적자를 메꾸고 있지만 “몇백만원 정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조만간 정부에서 해준다는 소상공인 대출을 받을 생각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요즘 배달 음식, 홈파티 이런 것 많잖아요. 예전 같지는 않을 것 같아요. 코로나가 하나의 전환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코로나19라는 이 낯선 질병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가져왔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 무게는 더 무겁다. 지난해 봄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하자 이른바 ‘코로나 시대’에 대한 전망과 분석들이 쏟아졌다. 그중 현실로 이어진 한 우울한 예측은 코로나가 불평등을 확대하리라는 것이었다. 코로나가 고소득층, 정규직, 남성보다 저소득층, 비정규직, 자영업자, 여성에게 더 가혹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코로나가 ‘불평등한 재난’이라는 사실은 어김없이 지표로 확인된다. 지난해 3분기 상위 5분위 소득은 하위 1분위 소득의 4.88배로 나타나 전년 3분기(4.66배)보다 격차가 더 커졌다. 일자리 역시 음식업·소매업 같은 대면서비스, 임시·일용직, 자영업자 부분에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자산시장 활황은 실물경제의 어둠과 대비돼 더 극적으로 보인다. 지난해 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주택 매매가격 상승률은 14년 만에 가장 높았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저금리와 유동성이 주가와 집값을 밀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자산가격이 상승하면 자산을 보유한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기업 중에서도 반도체, 플랫폼, 온라인쇼핑 같은 비대면 관련 분야는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더구나 이런 어려움과 혜택의 치우침이 코로나19 이후에도 고착화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코로나가 가져올 경제구조의 변화는 누군가에겐 도약의 기회가, 누군가에겐 생존의 위협이 될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4차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며 나름대로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 계층의 비명이 커지고 지원 여론이 높아지면 마지못해 재정을 푸는 모습을 반복했다는 비판 역시 나온다. 어느 때보다 분배자로서의 정부 역할이 요구되는 때다. 코로나 종식 시기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선제적이고 과감한 재정지출은 상당한 기간 동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기존의 정책 지평을 뛰어넘는 시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코로나라는 시련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얻은 성과 중 하나라면 실제 시행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비롯해 기본소득, 기본자산, 사회연대세 등 다양한 경제사회정책이 공론장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이런 제언들에 대한 더 적극적인 논의와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우리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그때마다 소득 격차가 벌어졌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반드시 깨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공식’을 깨기 위한 더 많은 포용정책과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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