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혜ㅣ시인
카피라이터, 만화가, 시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종종 강연의 기회를 얻는다. 청중 앞에 준비한 이야기를 무사히 착륙시킨 뒤엔 뭉근해진 분위기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갖곤 한다. 근래 들었던 질문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이것이다. “다양한 일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클 것 같은데 어떻게 쉬시나요?” 이 질문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평소 받아왔던 질문들이 ‘여러 직업을 넘나들며 시간 운용은 어떻게 하시나요?’, ‘창작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나요?’같이 주로 일을 ‘해나가는’ 기술에 대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은 일을 ‘내려놓는’ 방식에 대해서였다. 낯선 질문을 받고 비어버린 머릿속에 커서 한개가 조용히 깜박거렸다.
나는 2020년에도 다양한 일을 벌였다. 쓰고 그리는 등 기존의 일을 이어가기도 했고 인터넷 방송과 같은 낯선 장르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추가한 것이 심리상담을 받는 일이었다. 매주 상담 선생님을 만나는데 엊그제 선생님이 질문하셨다. “늘 긴장도가 높은 것 같은데 어떻게 휴식하세요?” 이 질문 앞에 또 내 머릿속 커서가 느리게 깜박거렸다.
희끄무레한 마음 위에 명멸하는 막대기를 잠시 바라보다 나는 강연장에서와 비슷한 대답을 했다. 드라마나 예능을 보거나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등 인터넷 세상을 떠돈다고. 실제 내가 비는 시간에 몰두하는 행동들이니 거짓은 아니었다. 내 답변을 듣고 선생님은 또 물어오셨다. “그렇게 하면 긴장이 풀리세요?” 이 질문의 벽 앞에 나는 다시금 멈춰 섰다. 휴식에 대해 답하며 내가 늘 멈칫거렸던 이유가 명백해졌다. 나는 언급한 행위들을 하며 진정 ‘쉰다’고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광고업의 숨 가쁜 스케줄과 끝없는 경쟁 속에서, 혹은 창작자로 살며 무한히 이어지는 마감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잠시 숨 쉴 틈을 얻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마치 내 심장을 어느 차가운 손이 움켜쥐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어지는 흥분과 불안에 겨워 말잔치가 이어지는 예능을 틀어두거나 아예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 먹방 따위를 본다. 혹은 소셜미디어에 접속해서 무한대로 펼쳐지는 타인들의 삶을 지문이 닳도록 문지른다. 알고리듬의 신에게 들려 누더기 같은 영혼으로 헤매다 동틀 무렵 어느 벌판에 쓰러져 잠들곤 한다.
더듬거리는 나의 고백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어쩌면 그건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직시하고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행동으로 덮어두는 게 아닐까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실은 내가 쉴 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어지는 각성 상태가 나를 피로하게 하지만 제대로 이완하는 법을 모르기에 마취를 택해온 것이다. 삶을 지탱하느라 들쑤셔진 마음을 다독거릴 재주가 없어 또 다른 자극을 주입해온 것이다. 내 영혼이 유령을 보고 놀란 아이 같다면 나는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법을 몰랐다. 대신 정신이 쏙 빠지게 단 콜라 따위를 물려주곤 했다. 질리고 움츠러든 마음은 달콤한 흥분으로 덧씌워졌지만 그게 진정한 해소일까?
새해를 맞으며 늘 중후장대한 계획을 세우곤 했다. 주로 성취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의 계획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나는 2021년에 제대로 쉬는 법을 찾고 싶다. 불안과 우울, 압박감 같은 감정들을 다른 자극으로 눙치는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다독이는 방법을 찾고 싶다. 일단은 ‘외부자극 없는 시간 보내기’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명상도 좋고 산책도 좋겠다. ‘쉬는 법 찾기’라니 한갓진 소리라 생각해왔으나 그게 아니었다. 쉬는 일 따위에 무슨 기술이 필요한가 싶었는데 그것도 틀렸다. 쉰다는 것은 삶을 건사하는 가장 적극적인 액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