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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우리는 ‘똥 치우는 아줌마’가 아닙니다 (상) / 이미영

등록 2020-12-30 15:15수정 2022-02-10 12:22

앞사람에게 “나한테서 냄새 안 나?” 물어보곤 하였다.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하지만 난 내 코끝에서 나는 냄새를 느끼곤 하였다. 석달 정도는 이런 현상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차츰 요양보호사 업무에 익숙해져 갔다.

이미영 | 요양보호사

나는 ‘요양보호사’이다.

2014년 여름부터 교육과 시험, 12월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수령했다. 20대 중반부터 쉬지 않고 직업을 가지고 활동을 해왔으나 40대 후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과정이 결코 쉽진 않았다. 시험을 치르기 전에 실습 기간이 있었는데 요양원 1주일, 방문 요양 및 주간 보호 1주일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주간 보호 시설은 요양보호사들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노래와 율동도 함께하는데 여흥을 즐기는 것에 그다지 재주가 없었던 나는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사회복지사를 두고 요양보호사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 싶었다.

요양원 실습에서는 요양원의 특유한 냄새와 함께 바쁘게 움직이는데 뭐가 뭔지 몰라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돌봄을 경험한 적이 없었고, 치매에 대응하는 것은 글로 배웠으나 접해본 적이 없어서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한 여성 어르신이 뭘 해달라고 했는데, 내가 잘못 알아듣자 욕을 하시는데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실습을 마치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였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해 요양보호사로 일을 시작하였다. 처음 일한 요양 시설은 규모도 꽤 되고, 신설이라 깨끗하였으며 나는 현장 용어로 퐁당당(3일마다 한번 출근해서 24시간 일하는 방식)으로 근무하였다. 실습도 하고 이론도 익혔으나 요양원 돌봄 현장에서 경험하는 일은 달랐다.

출근해서 인수인계를 포함한 조회, 청소, 기저귀 케어 여러 차례, 목욕이 있는 날은 8~10명 목욕 케어, 간식 드리고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이 되고, 점심을 위해 어르신마다 이동해 모시고 점심 드시게 도와드리고 어르신 케어를 마무리하면 요양보호사들은 교대로 식사를 한다. 내가 밥을 그렇게 빨리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다. 몸이 고되다 보니 먹는 양도 많아지고, 후다닥 먹고 가야 동료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휴식시간도 없이 기저귀 케어 등 어르신을 돌보고 인지 활동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위해 이동지원, 프로그램 참여하고 간식 드리고 또 청소, 빨래 등 정리하고 나면 저녁식사 준비, 식사 케어 후 취침을 위한 준비를 한다. 저녁 8시가 지나면 어르신들이 주무시기 시작하고 그러면 하루종일 땀범벅이 된 요양보호사들은 자기 몸을 씻을 수 있었다. 야간에도 라운딩을 수시로 돌아야 하며, 기저귀 케어를 여러 차례 해야 하고, 어르신이 부르시면 달려가야 한다.

그나마 내가 근무했던 요양원은 휴게공간이 있어서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교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요양원의 경우 야간 휴게시간이 있기는 하나, 공간이 없어 어르신들의 생활실에서 돗자리를 깔고 쉬거나 소파 등에서 잠시 눈 붙이는 정도이고 이러다가도 어르신이 부르시면 달려가서 케어를 해야 한다.

밤 근무 중이던 여름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새벽 2시경 나를 불렀다. “야야~” 여자 어르신으로 몸은 왜소하였으며 허리가 굽어 늘 모로 쭈그리고 누워만 계시는 분이었는데 밤이면 잠이 안 온다고 자주 부르셨다. 혼자 근무 중에 부르시니 가보았는데 하시는 말씀이 “창밖에 갓 쓴 젊은이가 검은 옷을 입고 있는데 들어오라고 해라”였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층은 4층이었다. 순간 식은땀이 흐르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얼른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고 “어르신, 젊은이 자기 집에 갔으니 얼른 주무세요” 하고 나왔으나 동료 요양보호사가 올 때까지 나는 긴장된 시간을 보냈다. 그날따라 요양보호사를 찾는 어르신이 많았던 기억과 함께 아직도 그 어르신의 그 밤 모습이 생생하다.

아무리 신설 시설이라고 해도 요양원 특유의 냄새는 있었다. 24시간 근무를 마치면 아침에 퇴근해서 씻고 쉬었다가 오후에 사람들을 만났다. 이야기 나누면서도 나는 나의 냄새를 맡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고 앞사람에게 “나한테서 냄새 안 나?” 물어보곤 하였다.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하지만 난 내 코끝에서 나는 냄새를 느끼곤 하였다. 석달 정도는 이런 현상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차츰 요양보호사 업무에 익숙해져 갔다.

평일 낮시간에 한 어르신의 아들인 보호자가 술을 먹고 요양원을 방문했다. 요양원 근처에 사는 아들은 자주 엄마를 찾아왔으며, 오면 요양보호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자신의 엄마에게 향했다. 그날 요양보호사들은 다른 어르신을 케어하고 있어 40대 후반 정도의 아들이 술에 취해 올라와 있는 줄도 몰랐다. 갑자기 남자 목소리가 들렸고 “도대체 뭐 하는 ×들이야?”….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올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하편은 다음주에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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