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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봉현의 저널리즘책무실] 백신, 언론은 무얼 했나?

등록 2020-12-29 16:13수정 2021-10-15 11:23

세계 여러 나라에서 12월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시작한 가운데, 24일 칠레 산티아고의 한 병원 중환자실 근무 의사가 백신을 맞고 있다. AP
세계 여러 나라에서 12월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시작한 가운데, 24일 칠레 산티아고의 한 병원 중환자실 근무 의사가 백신을 맞고 있다. AP

이봉현 ㅣ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경제부 기자들은 묘한 금언을 공유했다. “독자를 놀라게 하지 말라.” 경제 현상은 늘 양면이 있고, 특히 금융은 말이 씨가 되기도 하니 흥분하지 말고 기사를 쓰라는 주문이었다. 이젠 달라졌지만, 기업의 1차 부도 기사는 쓰지 않았다.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이 기사 한줄 때문에 쓰러지기 때문이었다.

기자가 풀을 베는 낫이 아니라 수술용 메스를 잡아야 하는 분야가 경제만은 아니다. 감염병 기사도 핏줄과 신경을 피해 환부를 짚는 의사처럼 차분하고 정교해야 한다. 자칫 지나친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불러 방역의 대오를 허물고, 여러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11월 중순부터 쏟아져 나온 <한겨레>를 포함한 국내 언론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관련 보도는 혼란스러웠다. 정밀하지도, 충실하지도 않았다.

정세균 총리의 말대로 정부가 낙관하다 백신 확보가 늦어졌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여름까지만 해도 가장 앞서가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집중했으나 임상시험이 삐끗해 결과적으로 그리됐다 해도, 미리 대안을 넓혀두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겨울 들어 하루 확진자가 1천명을 오르내리고, 상인들이 연말 장사를 포기할 정도로 거리두기가 강화된 마당이어서 시민들이 백신 접종 시기를 두고 초조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정부를 질타하는 언론의 쇳소리가 겸연쩍게 들리는 것은 “그럼 언론은 뭐 했느냐?”는 반문이 뒷덜미에 맴돌기 때문이다. 3월부터 11월 말까지 ‘코로나 백신’을 키워드로 검색한 11개 중앙일간지 기사 424개를 살펴보자(‘아이서퍼’ 검색). 화이자가 자사의 백신이 90% 이상 예방 효능을 보였다고 발표한 11월10일 이전에는 세계 백신 개발 현황을 모니터링하거나, 정부의 백신 확보 진척 상황을 점검한 보도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백신을 ‘궁극의 해결사’로 깨닫고 그 취재·보도에 자원을 투입했다 보기 어렵다.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신 개발 독촉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안전성을 강조하는 기사도 많았다. 그러다 확진자가 늘고 다른 나라가 맞을 채비를 하니 “정부는 뭐 했냐”고 눈을 치켜뜬다. 높이 앉아 심판자처럼 구는 것도 모자라 백신을 통해 ‘케이(K)방역’의 성과를 부정하고, 정권에 타격을 주려 골몰하는 기사도 많다.

이런 보도는 방역 일선의 의료진이나 당국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며칠 전 페이스북에 그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코로나 백신 관련 좋은 기사의 조건”이라며 △연구와 도입 관련한 문제 △제도적 미비점 △정부의 상황판단 문제 △예산 확보 및 적극 행정의 어려움 △극복을 위한 대안과 선택지 제시 등의 주제를 열거한 뒤 “이런 수준의 탐사기사는 언제쯤 나오려는지…” 하며 말끝을 흐렸다.

&lt;뉴욕 타임스&gt;가 6월부터 운영 중인 ‘백신 트래커’. 전세계 백신 개발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독자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뉴욕 타임스>가 6월부터 운영 중인 ‘백신 트래커’. 전세계 백신 개발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독자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이렇다 보니 백신에 대한 주요한 정보를 얻는 곳이 ‘백신 트래커(추적자)’ 같은 해외 언론들이다. <뉴욕 타임스>가 만든 이 사이트는 유명 과학 기자 칼 지머가 과학 그래픽 에디터인 조너선 코럼과 함께 6월부터 가동했다. 백신 개발 현황을 임상 단계별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백신별 특성과 개발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공개하자마자 뉴욕 타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이트가 됐다. 이 신문은 치료제 개발 현황을 보여주는 ‘추적자 사이트’도 운영 중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오랜 시간 자료와 논의를 축적해 독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는 것이다. 칼 지머는 11월 하순 <시사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백신과 백신 리스크, 그리고 관련된 주제를 (독자들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은 실상을 제대로만 보여줘도 할 일을 다 한 것이고, 대안까지 제시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가만히 있다 느닷없이 비판 세례를 가하기 전에 할 일이 더 있음을 ‘백신 트래커’는 보여준다. 우리도 하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감염병에 승리하는 데는 좋은 백신 못지않게 좋은 언론도 필요하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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