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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조국’에서 벗어나야 산다 / 이춘재

등록 2020-12-28 17:56수정 2020-12-29 02:42

이춘재 ㅣ 사회부장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경 말씀에 자주 감동한다. 지난 23일 정경심 교수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을 때 이 말씀이 떠올랐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지혜의 왕 솔로몬이 썼다는 전도서 7장 14절이다. 이 말씀은 한 지인의 사연을 통해 알게 됐다. 2017년 3월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다음날 그는 어머니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손수 장만한 성경책 한권을 박 전 대통령이 수감된 구치소에 넣어달라고 했다. 검사인 아들이 그 정도의 ‘민원’은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구치소에서 성경책은 수용자가 원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박) 대통령이 꼭 읽었으면 하는 말씀이 생각나서 그렇다. 네가 엽서에 그 말씀만이라도 적어서 보내줬으면 한다”고 당부하셨다. 그의 어머니가 박 전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바로 전도서 7장 14절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나의 짧은 소견으로도 이 말씀에 방점은 ‘형통한 날에 기뻐하고’에 찍히지 않는 것 같다. 일이 잘 풀릴 때 기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솔로몬 왕이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씀은 ‘곤고(형편이 딱하고 어려움)할 때 되돌아보라’가 아닐까.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변명하거나 복수심에 불타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은 웬만한 내공을 쌓지 않으면 쉽지 않다. 그 고난이 남이 의도적으로 내게 가한 것처럼 보일 때는 더욱 그렇다. 정경심 교수가 법정구속된 날 남편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보인 반응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정경심 교수 1심 판결 결과, 너무도 큰 충격입니다. 제가 장관에 지명되면서 이런 시련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나 봅니다”라고 썼다. 안타깝게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태도와 거리가 먼 글이다. 그는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지 않았다면 아내가 감옥 갈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우선 자신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는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조 전 장관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정 교수의 500쪽이 넘는 판결문에는 평등과 공정, 정의와 정반대되는 사실들이 넘쳐난다. 검찰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법정에서 공개된 증언과 증거로 확인된 것들이다. 조 전 장관이 직접 문 대통령의 공언을 깬 것도 있다. 딸의 스펙을 위해 자신이 몸담고 있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의 허위 인턴십 확인서를 직접 발급한 것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그는 사모펀드 횡령 혐의 무죄는 다행이라고 했지만, 횡령 못지않게 엄중한 위법행위도 적지 않다. 그가 민정수석이 되자 정 교수는 재산등록과 백지신탁을 피하기 위해 차명으로 주식거래를 했다. ‘아내의 재테크에 대해 잘 모른다’던 그는 배우자의 주식 투자로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곤경에 처한 것을 보고 아내의 파생상품 거래를 만류했다. 아내의 재테크가 공직자윤리법 위반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국 수호’에 앞장섰던 여권 정치인들은 지금 “윤석열 탄핵”을 외친다. 그들은 여전히 조국 프레임에 갇혀 있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사회 전체가 곤고한 상태가 계속될 뿐이라는 걸 깨달을 때가 됐는데도 말이다. 임기 후반의 검찰총장은 그냥 놔두면 힘이 빠진다. 이런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윤 총장에 대한 복수심만 불태운 결과 임기 말 총장을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만들었다. 거꾸로 문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졌다. 지독한 역설이다. 솔로몬 왕의 말씀은 반성하지 않으면 고난의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는 무서운 경고다. 내 지인은 박 전 대통령에게 끝내 엽서를 보내지 않았다. 그가 무슨 일이 있어도 반성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집권여당은 어떨까.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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