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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재승 칼럼] 변창흠 후보자, 진정한 사과는 자진 사퇴다

등록 2020-12-28 09:09수정 2020-12-29 02:40

사과에 정답은 없다. 당사자가 받아들일 때까지 진솔한 마음으로 계속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사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사과를 받아야 할 김군은 세상에 없다. 김군의 유가족과 동료들은 사과를 거부했다. 사과 방식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변창흠 후보자가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자진 사퇴 외에는 없어 보인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구의역 김군 사망 사고’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구의역 김군 사망 사고’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의 ‘고위 공직 후보자 7대 인사 검증 기준’에 위배되는 잘못이 드러나지 않았다. 7가지 기준은 병역 기피,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음주 운전, 성 비위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변 후보자에 대해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재산 축소 신고, 카드 대출을 통한 아파트 매입, 서울대 환경대학원 동문 특혜 채용, 연구용역 수의계약, 법인카드 과다 사용, 과태료 미납 등. 대부분 과도한 부풀리기거나 아니면 말고식 의혹 제기다. 출처 불명의 음해성 투서도 동원됐다. 조선일보는 변 후보자 자녀가 13년 전 중학생 때 쓴 블로그 글까지 긁어다 선정적 제목을 붙였다. 저열하기 짝이 없다. 변 후보자가 밝힌 주택 정책이 “북한식 부동산 정책과 어떻게 다르냐”는 색깔론까지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흔들려는 의도가 읽힌다.

그럼에도 변 후보자는 자진 사퇴하는 게 맞다. 2016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시절 ‘구의역 김군 사망 사고’와 관련한 발언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변 후보자는 “구의역 사고를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이고, 이게 시정 전체를 다 흔든 것이다. (중략) 하나하나 놓고 보면 서울시 산하 메트로로부터 위탁받은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거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만 조금만 신경 썼었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는데 이만큼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2인1조가 해야 할 일을 비용을 줄이려고 하청업체 노동자 한명에게 떠넘긴 탓에 김군은 목숨을 잃었다. 안전수칙 무시와 위험의 외주화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인재를, 변 후보자는 김군 개인 책임으로 돌렸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인식 부재를 드러낸 것이다. 변 후보자의 발언은 김군처럼 여전히 위험에 방치된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또 다른 김군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 19살 청년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열차에 치여 숨진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 한 많은 국민들에게 변 후보자의 발언은 모욕일 수 있다. 안전사고가 빈발하는 건설·교통 분야의 장관을 맡기에는 너무 큰 결격 사유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거듭 사과하지 않았느냐고, 얼마나 더 사과를 해야 하느냐고, 지난 일을 가지고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사과에 정답은 없다. 당사자가 받아들일 때까지 진솔한 마음으로 계속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사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사과를 받아야 할 김군은 세상에 없다. 김군의 유가족과 동료들은 변 후보자의 사과를 거부했다. 김군의 어머니는 심상정 의원이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개한 육성 녹음에서 오열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숨을 쉬고 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니예요. 우리 아이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 아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사실만은 밝히고 싶어요.” 김군의 동료들도 “사과를 받아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김군”이라며 사과하겠다는 변 후보자의 요청을 거절했다.

변 후보자의 사과 방식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발언 내용이 처음 알려진 날, 변 후보자가 내놓은 사과문은 석줄짜리였다.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도,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의사도 없었다. 무성의한 사과는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김군의 유가족이 만남을 거부하자, 변 후보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고 김용균씨 어머니와 고 이한빛 PD 아버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을 찾아갔다. “김군 유족에게 사과를 해야지 여기 와서 사과를 해도 우리가 해줄 말이 없다. 오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라는 말에, 변 후보자는 “국토 관련 일만 하다 보니 교통은 잘 몰랐다”고 답했다. 어떻게든 불을 꺼보려고 급한 마음에 나섰지만 안전 문제에 대한 인식 부재만 또 다시 드러냈다. 김군 관련 발언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 셈이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중대 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 바로 건설 현장이고, 그 현장을 총괄해야 할 사람이 국토부 장관”이라며 “전공 분야가 달랐다는 변 후보자의 인식 자체가 오답”이라고 지적했다.

변 후보자가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자진 사퇴 외에는 없어 보인다. 그것이 지금까지 진보적 학자로서, 주택 정책 전문가로서 학계와 현장에서 쌓아온 명예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청와대와 민주당도 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해선 안 된다. ‘부동산 3법’과 ‘임대차 3법’은 보수 야당과 언론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통과시킨 게 옳았다. 반드시 필요한 법안들이어서 명분이 있었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는 결연한 의지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변 후보자에 대한 비판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보수 야당과 언론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부적격 후보자’라고 얘기한다. 한해 산업재해로 2300명이 목숨을 잃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사람이 먼저”라는,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겠다”는 국정 철학을 내세우면서 변 후보자를 임명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변 후보자를 통해 주택 공급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어 집값을 안정시키고 싶어 하는 청와대와 여당의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정책이 성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이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면 지지층까지 실망하고 돌아설 수 있다. 민심도, 정책도 다 잃게 되는 것이다.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안재승 논설위원실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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