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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콘크리트 앞에서

등록 2020-12-24 16:09수정 2021-01-13 15:02

전치형ㅣ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우리는 인간이 만든 것의 질량이 자연이 만든 것의 질량을 넘어선다는 사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산재 사고’라는 말로 지칭하는 죽음이 매주 자기 몸무게만큼 인공물을 생산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수시로 닥치고 있다.

과학 논문을 읽으면서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일은 흔치 않다. 연구 결과를 두고 신약, 신물질, 신제품 개발 가능성과 그 경제적 효과를 논하는 경우는 많지만,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는 장면은 왠지 어색하다. 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것 같은 과학 논문도 나온다. 연말이라 그런 느낌이 더 드는지도 모르겠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 12월17일치에 그런 논문이 한 편 실렸다. 이스라엘의 바이츠만(와이즈만) 연구소 소속 저자들은 인간이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만들어낸 것의 총 질량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총 질량을 넘어섰다고 추정했다.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전체 생물의 질량에 큰 변화가 없었던 반면 인공물의 질량은 급격하게 증가한 결과라고 한다. 연구진은 인공물의 질량이 20년마다 두배로 늘어났으며, 2020년 무렵에 두가지 질량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교차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것의 질량이 자연이 만든 것의 질량을 넘어선다는 사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이 세계에서 인공이 자연을 초월하는 일종의 특이점이 도래했다고 보아야 할까. 이런 현상을 초래한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인간은 무엇을 만들어온 것일까.

연구진이 제시한 인공물의 여섯 가지 범주는 단순하고 뻔한 것들이다. 콘크리트, 골재, 벽돌, 아스팔트, 금속, 기타(목재, 유리, 플라스틱). 그러니까 인공물이란 대체로 도로, 건물, 공장처럼 인간이 모여서 먹고사느라 지어 놓은 구조물을 이루는 것들이다. 도로를 깔고, 건물을 올리고, 공장을 세워서 기계를 들여놓기를 100년 넘게 계속하다 보니 인간은 이제 자연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인공물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연구진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매주 자기 몸무게만큼의 인공물이 생겨나는 것을 목격하는 셈이라고 말한다. 인공물은 거대한 자연 속에서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작은 피난처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아마도 연구진은 인공물과 생물의 질량이 교차하는 그래프를 통해 인류와 지구의 운명에 대한 성찰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2020년 한국에서 콘크리트, 골재, 벽돌, 아스팔트, 금속 같은 인공물의 목록은 인간 집단 전체의 운명보다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도로, 건물, 공장이라는 인공물을 짓고 운용하고 관리하는 데에 많은 사람의 생계가 달려 있고 또 목숨이 달려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인공물을 만들고 유지하는 현장은 여전히 허술하고 위태롭다. 흔히 ‘산업 재해’, ‘산재 사고’라는 말로 지칭하는 죽음이 매주 자기 몸무게만큼 인공물을 생산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수시로 닥치고 있다.

생물보다 인공물이 더 흔해진 지금 우리는 사고의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인공물로 가득한 세계에서 사고는 이제 “뜻밖에 갑자기 일어난 좋지 않은 일”(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 아니다. 우리가 인공물에 둘러싸여 일하다가 죽을 때, 이것은 우리의 먼 조상이 별안간 번개가 치거나 화산이 폭발해서 죽던 것과 다르다. 인간이 설계하고 만든 현장에서 왜 인간이 추락하고 절단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고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인공물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대체로 예견된 사고이다. 우리의 지식 범위 안에 있는 일이다.

예견할 수 있는 사고, 이미 가진 지식을 벗어나지 않는 사고, 그러니까 뜻밖이 아닌 사고는 인간과 조직과 제도에 그 책임이 있다. 사람이 콘크리트로 건물을 짓다가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 죽을 때, 공장에서 기계 밑을 살피러 들어갔다가 몸이 끼어 죽을 때, 지하철 선로에 들어가 고장 난 문을 수리하다가 열차에 치여 죽을 때, 그것은 하늘의 뜻이나 우연한 불행이 아니라 인공의 사고, 인공의 죽음이다. 원인을 조사하고 잘잘못을 가려서 앞으로 되풀이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죽음이다.

재작년 이맘때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 아닌 사고로 아들 김용균을 잃은 김미숙씨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는 마음도 그럴 것이다. 김미숙씨는 아들을 앗아간 발전소만큼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인 국회의사당과 맞서고 있다. 2021년에는 이 땅에서 인간과 인공물의 관계가 죽음이 아니라 삶으로 구성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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