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배 ㅣ 칠레센트랄대학교 비교한국학연구소장
3월부터 지금껏 재택근무다. 21일 칠레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943명, 사망자만 43명이 나왔다. 방콕생활이 길어지니, 빤한 월급 통장이지만 잔고가 늘었다. 휴학생과 자퇴생이 늘면서 어떤 대학은 교직원 임금을 삭감했다는데, ‘아직은’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 그런데 돈 쓸 데가 없다. 다른 지방으로 여행은 허가가 없으면 금지다. 외식도 힘들다. 세워둔 차는 기름값도 안 든다. 실업급여를 받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니, 내 처지에 감사할 뿐이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소득격차가 더 커지는 걸 실감한다.
절박한 사람들은 연금을 찾으려고 다시 줄을 섰다. 적립금의 10% 중도인출이 지난주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제 두번째다. 지난 8월 10% 인출을 1차 허용했다. 차이라면, 이번에는 고소득자에 한해서 세금을 징수한다.
짐작하듯, 논란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쪽은 어렵다고 연금을 찾아 쓰면 노후는 어떻게 대비하냐며 중도인출에 반대했다. 가뜩이나 칠레의 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이 낮고 노후대비에 턱없이 모자라, 지난해 대규모 시위의 한 원인이었다. 다른 한쪽은 당장 먹고살기 어려워 죽을 판인데, ‘한가하게’ 미래를 걱정할 상황이냐며 찬성했다. 벌써 3차 인출 주장까지 나온다.
한국에는 미국과 유럽의 상황이 부각됐지만, 중남미의 코로나 상황도 심각하다. 12월21일 월드오미터 코로나19 통계를 보면, 확진자 기준으로 상위 25개국 안에 중남미 6개국이 들어가 있다. 브라질(3위), 아르헨티나(10위), 콜롬비아(12위), 멕시코(13위), 페루(16위), 칠레(24위)다.
이날 기준 한국과 비교하면 심각성이 느껴진다. 한국은 인구 100만명 대비 확진자-사망자가 각각 968명-14명이다. 그런데 브라질은 3만4060명-878명, 페루는 3만56명-1118명, 칠레는 3만608명-844명에 이른다. 프랑스 3만7941명-932명, 이탈리아 3만2507명-1146명과 큰 차이가 없다.
페루는 지난 5월 연금 적립금의 최대 25% 중도인출을 처음 허용한 데 이어, 이달 초 다시 중도인출을 허락했다. 멕시코,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 중남미 다른 5개국에서도 연금 중도인출이 논의되고 있다. 중남미의 코로나 위기는 유럽과 비슷하지만, 사정은 더 절박하다. 중남미는 유럽보다 소득수준이 훨씬 낮다. 실업급여 등 사회보장제도와 의료시설 역시 한참 뒤처진다. 빈부격차가 커서, 서민들의 형편이 훨씬 더 어렵다. 게다가 페루는 지난 11월, 8일 사이에 대통령이 두번이나 바뀌는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브라질은 대통령이 “(백신을 맞고) 악어가 된다면 그건 네 문제다”라며 백신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있으니, 위기 관리가 힘들다.
칠레의 경우, 코로나는 상대적으로 늦은 지난 3월부터 번졌지만, 경제적 타격은 지난해 10월부터 몇달째 이어진 대규모 시위 이후 누적돼왔다. 그 탓에, 1차 중도인출 때 연금 가입자의 92%인 1015만명이 신청했다. 지난 18일 기준, 이미 640만명이 2차 중도인출을 신청했다. 학교 동료가 1차 인출 뒤 중고차를 새로 산 것을 보면, 중도인출이 당장의 소비 진작 효과는 있는 것 같다. 2차 인출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둘러 허용됐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백화점에 다시 줄을 섰다.
하지만 당장의 소비 진작 효과를 넘어, 연금 중도인출이 불러올 미래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그러니 백신을 맞는다고, 치료제가 개발된다고 끝이 아니라, 지금의 코로나 위기는 미래의 또다른 사회적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 코로나 탓에 빈부격차는 개인을 넘어 국가, 대륙 간에 더 커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