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법원의 직무정지 효력 집행정지 결정으로 대검찰청에 출근한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 김태규 법조팀장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2개월을 결정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윤 총장과 언론사 사주의 ‘부적절한 교류’를 불문 처분했다. 두 사람이 만난 경위·목적, 형사사건과의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징계 권한은 자제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언론사 사주와의 회동은 윤 총장 대면 감찰조사가 필요한 이유로도 꼽혔는데,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사후 보고했고 “검찰총장 인사검증 때 문제 삼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판단을 바꿔 징계혐의사실로 특정된 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윤 총장 쪽은 반발했다. 윤 총장이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자신을 다그치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향해 “과거에는 저에 대해 안 그러지 않았느냐”고 응수하는 장면이 오버랩됐다.
8건의 징계 사유 중 징계위가 인정한 4건을 찬찬히 살펴봤다. ‘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 작성이 첫째 징계 사유로 꼽혔지만 ‘사찰’이 아니라고 윤 총장이 강하게 반박하고 있고, 판사들 생각도 갈리는 만큼 일단 판단을 유보하겠다. 검·언 유착 의혹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독직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사실상 수사가 물 건너갔지만, 윤 총장이 올해 4~6월 관련 감찰과 수사를 방해한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결국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윤 총장 지휘권이 박탈되는 굴욕을 겪었기에 이를 다시 징계 사유로 얹는 게 합당한지 의문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 정치 참여를 시사한 발언은 그 파급력 측면에서 다른 징계 사유를 압도한다. 은밀한 수사지휘도 업무 지시도 아닌 생중계된 공개 발언이었으니 사실관계를 놓고 다툴 이유도 없다. 윤 총장 쪽은 “정치를 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당시 발언은 다음과 같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
“임기 마치고 나서 정치하실 겁니까?”
윤석열 검찰총장
“글쎄, 저는 뭐… 지금 제가 제 직무를 다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고, 제가 또 향후 거취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퇴임하고 나면, 제가 소임을 다 마치고 나면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은 퇴임하고 나서 좀 천천히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김 의원
“그 봉사의 방법에는 정치도 들어갑니까?”
윤 총장
“글쎄, 그것은 제가 지금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치고 있기에 “혹시 오얏을 따려는 것이오?”라고 묻자 “그건 지금 말할 수 없소”라고 답하는 꼴이다. 현직 검찰총장이, 그것도 이미 대선 주자의 반열에 오른 그가 정치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은 건 총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윤 총장 주변에서는 “하도 못살게 하니까 질러본 위악적 발언”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관계에서 자신은 일방적인 피해자인데 동반 퇴진하라는 주장에 매우 억울해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국민적 지지를 모아 몸집을 불리는 게 자구행위라고 생각했다면 이는 판단 실수다.
추-윤이 대립했던 지난 1년은 정상이 아니었다. 장관과 총장의 인사 협의가 사라지고, 3개월 새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두 차례나 발동됐다. 현직 검찰총장은 공개적으로 정치 참여 가능성을 시사하고 결국엔 여론조사 1위 대선 주자로 등극했다. 치열하게 다퉜던 추 장관은 이제 무대에서 내려오지만, 윤 총장은 남았다. 법원 결정으로 직무에 더 빨리 복귀할 수도 있다. 돌아온 그가 우선 해야 할 일은 대선 주자의 굴레를 벗는 일이다. 야권 대선 주자가 지휘하는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대선 전초전이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부하도 아닌 후배 검사들이 그 전투에 동원되는 건 무슨 죄인가. “퇴임 뒤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해, ‘정치적 수사지휘’라는 의심과 프레임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것이 지난 1년의 혼란을 윤 총장이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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