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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 이철희

등록 2020-12-21 14:33수정 2020-12-22 14:12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1년 경제정책방향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1년 경제정책방향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금 문재인 정부는 위기, 그것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안팎의 전례가 말해주듯 대통령이나 정부의 위기는 지지율의 하락과 지지기반의 균열로 나타난다. 지지율 하락의 요인만 발생할 경우엔 수습이 가능하거나 쉽다. 그러나 이 하락이 균열과 결합되면 회복하기 어렵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그 기로에 서 있다.

대통령의 힘(Presidential power)은 제도적 권력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제왕적’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대통령의 권한이 크다 해도 그것이 대통령이 가진 힘의 원천은 아니다. 제도적 권한 외에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관행적 권력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힘은 대중적 지지(Popular support)에서 비롯된다. 거의 유일한 전략자산이다.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더라도 대중적 지지를 잃으면 제아무리 큰 법적 권력이 있어도 제대로 통치하기 어렵다.

대통령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약해지면 의회가 반기를 들기 시작하고, 언론도 비판 논조를 강화한다. 정치적 반대 세력의 활동도 부산해진다. 스캔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집권당을 비롯해 여권의 결속력도 떨어지고, 대통령 어젠다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다음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는 주자들은 차별화에 나선다. 그럴수록 열성 지지층은 조바심을 내고 ‘욕받이’를 찾아 화풀이한다. 결국 대통령의 운신 폭이 좁아지고, 심할 경우 레임덕에 빠진다.

컨설턴트 딕 모리스의 말처럼 여론조사의 수치는 민심의 풍향계다. 전임자들에 비해 높기는 하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4월 총선을 정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해 거의 임계치에 근접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5월 첫주 대통령 지지율은 71%에 달했다. 이후 점차 낮아져 지난주 조사(12월8~10일)에선 38%로 떨어졌다. 대선에서의 득표율 41.1%에도 못 미친다. 이 정도면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좋고 나쁨을 가르는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그때그때 다르다. 수치가 비교적 높더라도 하락 추세이거나 그 하락의 폭이 크거나 급격할 경우, 또는 하락을 초래한 원인이 사회경제적일 경우엔 나쁜 것으로 간주된다. 최근의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양도 크고 질도 나쁘다. 한달 전인 11월 둘째주에 비해 찬성은 8%포인트 떨어지고, 반대는 9%포인트 높아졌다. 핵심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20대의 이탈 흐름이 계속되고, 부동산이나 코로나19 대응과 같은 사회경제적 이슈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평가도 최고 85%(5월 셋째주)에서 56%(12월 둘째주)로 떨어졌다. 여기에 이른바 추-윤 갈등이 더해져 지지기반의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돌발변수나 특정 사건에 의한 일시적 이탈로 보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회에서 절대적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흔히 말하듯 개헌 말고는 다 할 수 있다. 하나 이런 당파적 우위가 대중적 지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물리적 다수가 기능적 다수로 작용하려면 대중적 지지가 필요하고, 사회적 다수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무엇보다 대통령과 여당이 정치를 펼쳐야 한다. 정치는 쪽수 게임이 아니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베버의 이 말처럼 정치를 힘으로 표현할 게 아니라 힘을 정치로 구현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약하게 그리고 급하게’ 뚫으려 해선 극복되기 어렵다. 의도적 고립에서 벗어나 국민과의 다층적 소통을 늘림으로써 서민적 감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지지기반의 균열을 막기 위해선 정치 프레임에서 사회경제적 프레임으로 바꾸고, 담대한 개혁에 나서야 한다. 어정쩡한 절충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차 뉴딜개혁이 저항에 부딪혔을 때 루스벨트는 더 강력한 2차 개혁으로 돌파했다. 그것이 다음 대선 승리와 뉴딜 성공의 요체였다.

비유컨대, 집토끼만 잡거나 산토끼까지 쫓을 게 아니다. 성패는 들토끼에 달려 있다. 집토끼·들토끼의 연합을 잃으면 소수파로 전락할 것이다. 흩어지고 있는 이 연합을 복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집토끼 운운하는 것은 무능의 알리바이, 자멸적 전략이다. 우리끼리 오순도순 잘 지내려면 정치 안 하는 게 맞다.

이철희 ㅣ 지식디자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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