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에게 잠재적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그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고, 검찰의 영향력 밖에 있는 독립적인 검사를 임명해 수사하도록 하는 제도를 개헌안에 포함시킬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유럽연합 국가들에 사법체계에 관해 자문하는 기구인 베니스위원회(정식 명칭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위원회’)는 지난 11일 불가리아 정부에 긴급 권고를 했다. 최근 제안된 불가리아 개헌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이 권고에는 검찰개혁 부분도 포함됐다. 베니스위원회는 검찰총장이 견제 없는 막강한 권한을 누리는 상황을 개선하도록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불가리아 정부에 권고해왔다.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고, 검찰총장이 모든 검사를 지휘하고, 검찰총장의 해임 여부를 결정하는 기구에도 검찰총장의 하급자들이 들어가 있다. 이로 인해 검찰총장은 사실상 ‘언터처블’이 된다.” 검찰의 일사불란한 조직 풍토와 유무형의 조직적 압력이 작용함으로써 검찰총장이 위법 행위를 저질러도 기소될 가능성이 없는 데다 징계 사유가 되는 행위가 있어도 법에 따른 해임이 불가능한 구조를 지적한 것이다.
베니스위원회의 이번 권고는 지난 여름부터 이어지고 있는 불가리아의 정치적 격동을 배경으로 한다. 직선으로 선출된 루멘 라데프 대통령과 다수당 대표인 보이코 보리소프 총리가 갈등하는 가운데 총리와 다수당 관련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대통령이 이에 대한 조처에 나서자 검찰이 갑자기 대통령 측근들을 권한남용과 기밀누설 혐의로 체포하며 수사에 나섰다. 이는 총리와 검찰총장 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다수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이반 게셰프 검찰총장이 검찰권을 총리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사용하고, 정작 부패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는 지연시킨다는 비판이 일었다. 판사들도 검찰이 정치적 권부가 됨으로써 사법체계의 위신을 손상시켰다며 검찰총장의 정치적 중립 훼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해임 절차 착수를 촉구했다. 총장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태 수습책으로 다수당은 개헌을 추진하고 있는데, 개헌안은 오히려 검찰총장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민주적 통제를 위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권한을 축소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사태의 원인은 1980년대 말 동유럽 구체제가 무너지면서 민주화가 진행되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행정부가 사법을 통제하던 사회주의 시절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 헌법은 검찰에 광범위한 특권과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현 검찰총장과 같은 정치적 인물이 검찰을 지휘하게 되면서 검찰이 정치적으로 선택적 수사·기소를 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런 상황을 두고 게셰프 총장은 검사와 수사관 7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가장한, 검찰을 타도하려는 정치적 공격”이라며 “검찰의 독립을 핵심 요소로 하는 법의 지배가 위협받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검찰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베니스위원회도 이번 권고에서 드러나듯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국제적 평가에서 민주주의 성취가 우리나라에 한참 뒤처지는데, 검찰을 둘러싼 진통은 엇비슷한 듯하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