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소설가·영화감독
‘판매 중: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세상에서 가장 짧은 6단어 소설로 유명한 문장이다. (헤밍웨이의 글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가 글을 쓰기 이전부터 있던 이야기라고 한다.) 이 짧은 글이 회자되는 이유는 말해지지 않은 사연을 상상하게 하며 슬픔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중고제품이란 누군가 필요해서 구매한 물건이 더는 쓸모없어져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필연적으로 사연을 가지게 마련이다. ‘공무원 수험책들 팝니다’, ‘에어팟 왼쪽만 팔아요’, ‘이혼하고 다 처분해요(가구)’, ‘출산하고 들고 다닐 일이 없어져서 팔아요(명품백)’.
나의 중고거래 경험치는 내 영화 입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잔뼈가 굵어졌다. 첫 거래글은 단편영화 소품으로 구형 육군 활동복(일명 ‘떡볶이’)을 구한다는 글이다. 당시 육군 활동복 디자인이 바뀐 상황이라 구할 수 없던 것을 중고장터를 통해 겨우 구할 수 있었다. 나의 첫 다큐멘터리 역시 중고장터 덕을 많이 보았다. 대학생이라 돈이 없던 나는 중고거래를 통해 장비들을 갖췄다. 2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카메라를 거래하면서 외관만 쓱 보고 살 수는 없으니 이것저것 상세하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내게 카메라를 판 분은 영화를 찍던 분이었는데 전공자가 아니었던 나에게 카메라 작동법과 주의사항을 상세하게 가르쳐주며 일일 촬영교실을 열어주었다. 헤어질 때는 좋은 작품 찍으라고 덕담도 해주었다. 이런 분들 덕에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기에 영화 크레디트 고마운 사람들에 ‘중고거래한 분들’을 적기도 했다.
미담이 있는가 하면 중고장터의 위험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기는 전문적으로 이루어진다. 중고시장에는 시세라는 게 있는데 시세보다 저렴한 물건은 순식간에 판매되기 때문에 판단을 흐리게 하기 쉽다. 그들은 주민등록증 인증까지 하고 프로필에 가족사진을 걸어둔다. 거래내역 확인과 더치트 검색(사기정보 조회)은 필수다. 판매 시 직거래는 무조건 회사 근처나 집 근처 자신이 편한 곳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시 안 볼 사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변심 후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오래전부터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라며 온갖 괴상한 거래 사연이 유머처럼 돌아다니는데 그건 중고거래가 익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익명의 환경이라 사람들의 민낯이 드러난다고 할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매너가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시 볼 일 없는 사이임에도 매너를 발휘한다는 사실이 기분 좋게 만들기도 한다. 최근에는 온갖 사연을 모아둔 ‘당근마켓 기상천외’라는 트위터 계정이 생겼는데 내가 요즘 접한 그 어떤 콘텐츠보다도 배를 잡고 웃게 했다.
중고거래에 대한 괴담들을 접할 때마다 인류애가 사라지고 별로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쓸모없어진 물건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라는 데 더 마음이 기운다. 사물의 존재 이유와 본질적 역할이 발휘되는 것이 좋으니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키보드도 단종되어 중고로밖에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제품이다. 판매하신 분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연애가 끝나고 사용하는 일이 적어진 내 디에스엘아르(DSLR)를 10대 커플이 멀리서부터 와서 사간 적도 있었다. 물건을 받고 고맙다며 너무 기뻐하는 둘을 보는데 미소가 절로 번졌다. 내 손을 떠난 카메라는 어떤 사진들을 렌즈에 담았을까. 잘 사용하고 있을까, 아니면 사용하지 않게 되어 또 다른 분에게 가 있을까. 이제는 구형 모델이 되었지만 어디서라도 좋은 쓰임새를 발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