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역사는 검증과 성찰을 생략한 집단적 정의가 거의 반드시 지옥문을 열고야 말았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저 지적 퇴행일 뿐이다.
박권일ㅣ사회비평가
질병의 대유행은 새삼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묻게 만들었다. <호모 사케르>로 명성을 얻은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지난 10월 발표한 글 ‘얼굴과 마스크’에서 이렇게 말한다. “(동물과 달리) 오직 인간만이 얼굴을 꾸미고, 자신과 다른 기본적인 경험을 가진 타인들과 의사소통한다.” 또 그는 “진정한 의사소통은 얼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마스크로 자국 시민의 얼굴을 가려 스스로의 얼굴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나라는 자신에게서 모든 정치적 층위를 지워버린 나라”라고 주장했다.
이 글은 즉시 격렬한 논란에 휩싸였다. ‘코로나19로 전세계가 팬데믹에 직면한 상황에서 유명한 학자가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대중을 선동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편에선 ‘코로나를 빌미 삼아 국가가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면서 정치의 위축을 우려하는 아감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럽의 철학자가 인간의 얼굴에 특별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예컨대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관계를 구체적인 ‘얼굴의 현현’으로 사유한 대표적인 철학자였다. 문화적으로도 유럽인과 미국인은 얼굴을 가리는 일을 불쾌하거나 떳떳하지 못한 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마스크가 강제된다고 정치가 불가능해진다는 식의 주장은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감안해도 억지스럽다. 무엇보다 그것은, 권력에 굴복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면종복배’를 일삼아온 인민의 창조적 저항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관점이다.
얼마 전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페이스북에 “백신 마피아가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너무나 조용하다”고 썼다. 거기에 작가 목수정씨는 ‘재벌, 정부, 언론’ “삼각구도의 카르텔이 버텨주는 한 조용하겠죠”라고 댓글을 달았다. 특히 목수정씨의 경우, 소셜미디어 등에서 최근 코로나 백신이 제약회사들의 음모라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유포해온 장본인이다.
한상균 전 위원장의 우려는 단지 백신 음모론 때문만이 아닐 거라 짐작한다. 국제노동기구의 권고를 무시하며 ‘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이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집회마저 축소·금지되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도 아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확실히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은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역량에 심대한 상처를 입혔다. 자유롭게 모이고, 마음껏 떠들고, 깃발을 들어 행진할 수 있는 권리가 전례 없이 침해됐다. 실제 몇몇 나라에서는 코로나 상황 이후 시민에 대한 국가의 물리적 폭력과 통제가 극심했다. 이것이 단지 보건상의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 위기임은 분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목수정, 한상균, 그리고 아감벤의 주장이 아예 무의미한 헛소리는 아니다. 같이 이야기해볼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저 주장들이 공론장에서 감염병 전문가의 의견과 대등하게 취급된다면 어떨까? 아감벤의 말을 좇아 진정한 정치를 요구하며 모두가 마스크 거부 운동을 벌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민주주의는 정치적 권리의 평등을 보장하는 체제지만 모든 의견의 평등을 보장하는 체제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만약 후자가 관철된다면 우리는 공교육 교과서에서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똑같은 비중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설마 저런 주장들이 무슨 영향이 있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이들도 있을 게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개를 들어 김어준을 보라.” 그는 ‘K값’ 운운하는 대선개표 조작설을 제기해 공론장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려 놓고, 또 수많은 음모론들이 대부분 오류로 드러난 후에도 일말의 사과 없이 방송 활동을 이어가며 맹활약 중이다. 이후 김어준을 벤치마킹해 개표조작설을 제기하는 극우세력을 보면서, 우리는 ‘김어준이라는 독’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생생히 목격하였다. 특히 유튜브 전성시대가 도래하며 수많은 ‘김어준들’이 원본의 존재감을 위협할 기세로 증식하고 있다. 이제 김어준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선의로 포장된 길이 모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아닐 테지만, 지난 역사는 검증과 성찰을 생략한 집단적 정의가 거의 반드시 지옥문을 열고야 말았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저 지적 퇴행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