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껌이나 하드를 사며 ‘하나 더’ 이벤트에 설레곤 했다. 포장 안쪽에 당첨 표시가 나오면 같은 걸 하나 더 주는 그런 행사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받아든 건 이 여섯 글자였다. “꽝! 다음 기회에” 늘 모든 건 말짱 황이었고, 이번 기회는 꽝 하고 대차게 문을 닫았다.
나이를 먹으며 표현만 점잖아졌을 뿐 속내는 비슷한 문구를 왕왕 마주했다. “불합격, 귀하의 자질도 우수하였으나 제한된 인원으로 인해…” “탈락, 비록 이번엔 협업할 수 없지만 제안서에 큰 인상을 받았으므로 추후 연이 닿는다면…” 모두 격식 있게 말하고 있지만 요약하면 결국 “꽝! 다음 기회에”였다.
시인을 꿈꾸며 많은 공모전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신춘문예, 신인상, 문학상 등등. 둘러보면 시를 읽는 사람은 드문데 쓰는 이들은 어디서들 튀어나오는지 경쟁률은 늘 수백 대 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시집 사는 사람들은 전부 자기 시 쓰고 있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문학 공모전은 딱히 탈락을 통보해주지 않기에 나는 당선자의 이름이 박힌 지면을 통해 나의 꽝을 확인하곤 했다. 대부분의 심사평에서 최종 후보작들을 따로 언급해주는데 나는 거기에조차 언급된 적이 없었다. 그걸 확인할 때마다 버려진 복권처럼 가슴이 구겨지곤 했다.
수많은 꽝을 수집한 끝에 이 년 전 등단이라는 것을 했다. 은하계를 터뜨릴 것 같은 성취감에 겨워 매일 심장에서 스프링클러가 터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건 찰나였다. 등단이 바로 시인으로서의 성공을 뜻하는 것이, 당연하게도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를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은 적었고 청탁은 드문드문 있다가 없어졌다. 남의 입을 통해 듣자면 사무치기에 차라리 내 입으로 말하면, 나의 재능이 문단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신인으로서 이대로 고사할 수 없기에 최근 한 공모전에 시를 투고했다. 무려 시 오십 편을 묶어 내야 응모할 수 있으며, 당선되면 문학상 수상자로서 시집을 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를 준비하면서 달포가량 시에만 매달렸다. 아침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남의 시를 필사하고 신작시를 구상하고 대가의 시론도 펼쳐 들었다가 나의 시를 소리 내 읊기도 하는 등 초야에 묻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처럼 살았다.
그렇게 애썼음에도 결과는 낙방이었다. 시를 쓰며 수없이 고배를 마셨지만 이번 건은 충격파가 달랐다. 패배감이 진득했다. 오십 편의 시는 내 문학 인생의 총망라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성취를 위해 이토록 사력을 다해본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꽝은 그야말로 꽈과광이었고 와장창이었다. 어제까지 보물 같던 나의 시 꾸러미가 이젠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번 ‘꽝’이 내 머리를 꽝 쳤고 내 세계를 꽈광 흔들었고 내가 쌓아온 것을 꽈과광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꽝의 잔해 속을 오래도록 헤매다 어젯밤 이를 앙다물고 나의 시를 슬쩍 들춰봤다. 한 달을 칩거하며 영혼을 다했다고 응석 부리기엔 사실 그간 퇴고를 게을리해서 벼락치기 하느라 대충 얼버무린 구절들이 보였다. ‘내가 쉰 편이나 써냈다니’ 하는 성취감에 들떠 냉정히 다스리지 못한 사유들이 보였다.나는 이제 ‘꽝! 다음 기회에’에서 꽝보다 ‘다음 기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의 세계는 꽝 소리를 내며 무너졌지만 세계의 재건은 무너진 자리에서 이루어지리라. 충격파를 통해 새로이 보이는 것이 있으리라. 나는 ‘꽝’을 ‘꽉’으로 슬쩍 바꿔본다. 이를 꽉 물고 좌절을 돌파해 ‘꽉! 다음 기회를’ 잡고 싶다. 울며 쥔 주먹이 더 단단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홍인혜 ㅣ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