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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정인 칼럼] 바이든 행정부의 세 갈래 길

등록 2020-11-29 14:15수정 2020-11-30 02:39

바이든 당선자는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동맹인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누차 강조해왔다. 북이 자제된 행보를 보이면서 남측과의 대화를 조속히 재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이든 행정부 아래에서는 서울을 통할 때 워싱턴으로 가는 길이 쉽게 열린다.

문정인 ㅣ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 가시화하면서 국제사회는 다시 한번 미국을 주목하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동맹을 중시하고 국제사회에 다자주의를 복원하겠다는 바이든 당선자의 정책 노선이 관심의 초점이다. 그러나 우리의 최대 관심사에 해당하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비록 구체적인 결과는 내지 못했지만, 수령제를 특징으로 하는 북한의 정책 결정 구조를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 접근법이 일정 부분 설득력 있어 보였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자는 다르다. 실무 접촉을 거쳐 평양이 비핵화에서 실질적 진전을 보여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뜻을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다.

그러나 바이든 캠프의 북핵 정책은 아직 가시화된 게 없다. 오바마 8년과 트럼프 4년의 북핵 정책에 대해 면밀한 재검토를 거친 후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뿐이다. 이 과정에서 바이든 행정부 내부에서는 첨예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다. 현재 바이든 캠프에는 세가지 경합 시각이 있다.

첫째는 ‘선 핵폐기, 후 보상’을 전제로 하는 비핵화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시각의 기본 전제는 정권 안보를 중시하는 평양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일 공조를 통한 군사적 포위와 경제 제재의 강화로 최대한의 압박을 지속하고, 미국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5개국 협력을 통해 평양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한편, 비밀공작과 심리전을 통한 김정은 체제 흔들기 등 다원적 강압 전략을 전개할 때 비로소 북한이 핵 포기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바이든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는 브루킹스연구소의 정 박 등 북한 지역 전문가들과 강경파 외교 전문가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둘째는 ‘점진적 동시교환 원칙’에 따라 대북협상을 설계해야 한다는 점진적 비핵화 혹은 핵 군비 통제 시각이다. 이들은 평양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협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은 핵미사일 활동의 동결은 물론 하노이에서 제안했던 영변 핵시설의 부분 폐기를, 미국은 이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 관계 정상화, 안전보장 조치를 제한적으로나마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초기 조치를 통해 신뢰를 구축한 다음, 상호협의하에 로드맵을 만들고 핵 시설과 물질,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해나가야 한다는 견해다. 문재인 정부의 접근법과 유사하다 하겠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등 북한과의 협상 경험이 있는 민주당 성향의 원로 인사들과 바이든 캠프 내 핵확산 분야 소장파 전문가들이 이러한 접근법을 옹호한다.

마지막으로 북핵의 안정적 관리를 주장하는 시각이다. 캠프 내 주류 외교정책 전문가들이 이에 속한다. 평양이 단기간에 핵을 포기할 가능성도 적고 그렇다고 군사행동을 통해 북핵을 제거할 수도 없으므로,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다분히 조건적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와 협상에 나서겠지만, 반대로 도발하면 응징을, 현상유지를 선호하면 ‘적대적 무관심’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는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자신감과 북핵 문제의 우선순위를 낮게 평가하는 미국 내 주류 집단의 정서가 깔려 있다.

향후 바이든 행정부가 이 세 갈래 길 중 어느 쪽을 택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평양의 행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의 선택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북측이 인내심을 갖고 협상 의지를 보이면 현재로는 소수파인 ‘단계적 비핵화’ 시각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이 경우 바이든 대통령은 1999년 페리 프로세스를 기본 모델로 최고위급 인사를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하고 협상을 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북한이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을 감행할 경우, 비핵화나 전략적 인내 시각이 탄력을 받으면서 2017년과 같은 위기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지금은 그만큼 평양의 선택이 중요한 시점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동맹인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누차 강조해왔다. 북이 자제된 행보를 보이면서 남측과의 대화를 조속히 재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이든 행정부 아래에서는 서울을 통할 때 워싱턴으로 가는 길이 쉽게 열린다. 아무쪼록 북이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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