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와 관련된 의혹 사건에 책임면제각서라는 낯선 단어가 등장한다. 이런 각서는 어떤 의미와 효력이 있을까?
형사사건에서 책임면제각서가 다뤄지는 경우는 드문데, 2014년 대법원 판결이 나온 업무상 과실치사 사건이 한 예다.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가 ‘의료진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책임면제각서를 제출한 뒤 무수혈 수술을 받다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해당 의사는 무죄 선고를 받았다. 대법원은 “환자의 자기결정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한 가장 본질적인 권리”라며 “망인이 책임면제각서를 제출함으로써 타가수혈을 거부하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였다”고 밝혔다.
이처럼 범죄가 성립하는 행위라도 피해자의 승낙 아래 이뤄진 경우에는 위법성이 떨쳐지기 때문에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승낙이 무조건 효력을 갖지는 않는다. 승낙이 유효한 것은 제3자가 아닌 자기 자신의 법익(법을 통해 보호하려는 이익)에 대한 침해를 허용할 때로 한정되고, 그 목적에도 윤리적 제한이 가해진다. 예를 들어 무수혈 수술이 단지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다. 자살을 방지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 전체의 법익이기도 하므로 아무리 본인이 승낙했더라도 이를 돕는 것은 범죄가 되는 것이다.
윤 총장의 장모는 2012년 의료재단에 투자해 공동 이사장을 맡았고 이 재단이 설립한 요양병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22억원의 요양급여를 부정수급했는데, 동업자 3명은 의료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처벌받은 반면 윤 총장 장모만 불기소 처분됐다. 2014년 5월 공동 이사장직에서 사퇴하면서 동업자로부터 ‘병원 운영과 관련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책임면제각서를 받았다는 등의 사유였다고 한다. 이 사건에서 침해된 법익은 동업자가 아닌 정부와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법익이다. 동업자는 책임면제각서를 써줄 위치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써준 각서가 불기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 각서가 위조된 것이라는 논란까지 일고 있다. 여러모로 수상쩍은 각서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