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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심채경의 랑데부] 별 보러 가자, 별을 보러

등록 2020-11-05 16:34수정 2020-11-06 02:39

심채경 Ι 천문학자

아직 남은 가을,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별을 보러 갔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근처 공터로, 누군가는 천문대로, 누군가는 인적이 뜸한 고원 지대로.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이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할 수도 있고, 망원경을 사는 사람도 많아질 것 같다.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은 밤하늘이 반짝이더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아티스트 적재의 ‘별 보러 가자’라는 곡이 입가에 맴도는 계절이다. 가을 하늘은 참으로 맑다. 건조한 날씨 덕분에 대기 중 수증기와 먼지의 양이 줄어들어서 낮에는 더욱 푸르고, 밤에는 더욱 어둡고 검은 하늘이 된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나는 법이다. 우리 눈은 대비되는 것을 잘 구별하기 때문에 뿌연 하늘에 뜬 밝은 별보다 칠흑 같은 밤에 보는 덜 밝은 별이 더 인상적으로 보인다.

노래는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문득 생각나는 사람에게로 이어진다.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함께 별 보러 가자고 말을 건넨다. 하늘이 높고 맑은 이 계절에 멋진 별자리 이름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별로 쑥스러울 일이 아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바퀴 돌다 보면 별이 많이 있는 쪽을 바라보게 되는 시기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시기도 있는데, 실제로 지구의 가을 시야에는 밝은 별이 별로 없다. 습하디습한 여름이 다 가고 하늘이 점차 맑고 깨끗해지는 계절에 쉽게 알아볼 만한 별이 없다는 건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은하수도 시야에서 멀어져버리고 만다.

게다가 가을과 겨울 하늘이 아무리 맑아도 수많은 가로등과 건물 불빛 때문에 도시에서는 별 보기가 쉽지는 않다. 요즘 밤하늘의 화성과 목성처럼 특정 시기에 밝게 보이는 행성이 더러 눈에 들어올 뿐이다.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마음먹고 떠날 수 없다면, 근처 천문대에 찾아가서 망원경으로 관측하거나 플라네타리움에서 가상의 밤하늘 풍경을 감상하는 정도가 우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요즘은 시민천문대를 건립했거나 새로 지을 계획이 있는 도시가 많아졌고, 연구용으로도 쓸 수 있을 만큼 구경이 크고 성능이 좋은 최신식 망원경을 보유한 경우도 꽤 있다.

나도 국내외의 여러 군데를 가 보았는데, 가장 깊은 인상이 남은 곳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아주 낡은 공간, 존슨우주센터다. 미국의 유인 우주 미션 본부이자 달에서 가져온 암석들을 조사하거나 우주선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연구 장소이며, 우주에 나갈 우주비행사를 훈련시키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내부에는 그때그때 나사(NASA)의 주요 관심사에 따라 최신식 전시물을 새로 설치하지만 건물 자체는 낡고 오래되었다. 건물 앞마당 벤치의 철제 기둥은 여기저기 녹슬고 벗겨져 있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 시설에도 오랜 세월 많은 아이들이 스쳐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우주센터는 설립된 지 60년이나 되었다. 그곳의 핵심 볼거리 중 하나는 실제로 아폴로 우주인들을 태우고 달에 다녀온 사령선이다. 지구로 돌아올 때 대기 마찰 때문에 검게 그을려 있는, 세 사람의 우주인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원뿔 모양의 좁은 공간일 뿐이지만 그 작은 구조물이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보기 흉하게 얼룩진 작은 사령선이 전시된, 군데군데 녹슬고 칠이 벗겨진 벤치가 마당에 놓인, 그런 낡은 우주센터를 갖고 있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날이 추워지니 겨울옷을 좀 장만할까 하고 나섰다가 어느 가게에 태양계 천체의 이름을 이용해 디자인한 옷이 잔뜩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토성, 천왕성, 소행성 등의 영문 알파벳이 앞판에 큼직하게 쓰여 있는 티셔츠를 보며 행성의 이름마다 국내에서 그 대상을 연구하는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씩 매칭해 보았다. 지금은 다른 걸 전공하더라도 한때 잠시라도 행성을 연구했던 적이 있는 이들까지 다 떠올려 보아도 임자 없는 행성이 몇 남았다.

뚜렷하게 잘 보이는 별자리는 별로 없지만, 아직 남은 가을,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별을 보러 갔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근처 공터로, 누군가는 천문대로, 누군가는 인적이 뜸한 고원지대로.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이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할 수도 있고, 망원경을 사는 사람도, 자식이 천문학과에 원서를 낸다고 할 때 웃으며 응원해주는 부모도 많아질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호호할머니가 된 뒤에는 국내 모처의 낡은 우주센터를 둘러보며 추억에 잠길 수 있기를, ‘별 보러 가자’ 한 곡을 몇시간이고 반복해 들으며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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