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대주주 양도세 논란 뒤집어보기 / 김수헌

등록 2020-11-01 17:25수정 2020-11-02 14:04

김수헌 ㅣ 경제팀장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문제를 둘러싸고 개인투자자와 경제부총리의 힘겨루기가 가열되고 있다. 10월5일부터 진행 중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해임을 강력히 요청한다’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참여 인원 23만명을 넘겼다. 현행 종목당 보유액 10억원 이상인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 대주주 기준을 내년 4월부터 3억원 이상으로 낮추기로 한 소득세법 시행령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홍 부총리에 대해 개인투자자의 조직적인 반발세가 만만찮은 모양새다. 앞서 마감된 ‘대주주 양도소득세는 폐기되어야 할 악법입니다’라는 국민청원에도 21만6844명이 동의했다. 20만명 이상 참여한 국민청원에 대해선 청와대나 정부 관계자가 답변을 내놔야 한다.

이런 반발을 두고 개인투자자의 ‘탐욕’이라고 질타할 수 있다. 정부 방침이 후퇴할 경우 “과세 형평성이 훼손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좀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거 정부는 주식 양도차익 전면과세라는 ‘정공법’ 대신 특정 종목 보유 금액을 기준으로 대주주 여부를 판단해 이들에게만 세금을 매기는 ‘우회로’를 통해 과세 물꼬를 텄다. 시장 충격을 우려한 차선책이었다. 2000년 처음 도입될 당시 종목당 100억원 이상이었던 대주주 기준은 2013년 50억원, 2016년 25억원, 2018년 15억원, 2020년 10억원 이상으로 꾸준히 낮아졌다. 문제는 대주주 범위가 확대되면서 이 과세 방식에 내재한 결함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에 해당하는지는 12월 마지막 거래일 주식 잔고로 결정된다. 따라서 투자자는 12월 말을 앞두고 주식을 일부 팔아 대주주 지정을 피했다가 1월 초에 다시 매수하면 과세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실제 해마다 연말께 조세 회피를 위한 개인투자자의 매도 물량이 쏟아지는 일이 반복됐고, 대주주 기준이 낮아질수록 매물은 늘어났다. 업계에선 예정대로 내년부터 대주주 기준이 3억원 이상으로 낮아지면 올해 말 조세 회피 매도 물량이 10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는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채, 불필요한 매매를 유발해 시장 변동성만 키우는 셈이다. 이런 부작용 탓에 세계 주요국 가운데 우리 같은 방식으로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자본차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던 만큼, 정권 초기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주식 양도소득세 전면과세 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 당시 과세 체계를 개편해 법안을 통과시키고 2~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쳤더라면 늦어도 내년쯤 새 제도 시행이 가능했을 것이다. 대주주 양도소득세를 둘러싼 이런 소란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전면과세는 유보한 채 과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 기준을 3억원 이상으로 낮추는 방식으로 구멍 숭숭 뚫린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제도를 유지했다. 정부는 뒤늦게 올해 6월 금융투자상품에서 발생한 모든 금융투자소득에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금융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관련 법안이 올해 말 국회를 통과하면 이 정부가 끝난 다음 해인 2023년부터 시행하도록 일정을 짰다.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여야 정치권의 분위기를 볼 때, 대주주 기준 완화는 원안대로 시행되기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정책 신뢰도 훼손이나 포퓰리즘 등 또 다른 논란이 불가피하다. 차라리 정부와 여당이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어떨까. 대주주 기준 완화를 유예하되, 주식 양도소득세 전면과세 조기 시행 카드로 판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시행 시기를 최소 1년 이상 앞당겨 이 정부 임기 안에 과세가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이다. 불합리한 세제를 포기하는 대신 제대로 된 세제를 빨리 도입하는 것이니 투자자를 설득할 명분도 있다. ‘결자해지’를 위한 정부·여당의 정치력을 기대해본다.

minerv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밥 먹듯 거짓말’ 윤 대통령 공천개입 의혹…특검밖에 답 없다 1.

‘밥 먹듯 거짓말’ 윤 대통령 공천개입 의혹…특검밖에 답 없다

이대로면 식물 대통령, 자진사퇴, 탄핵뿐이다 2.

이대로면 식물 대통령, 자진사퇴, 탄핵뿐이다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3.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지지율 필연적 하락의 법칙’과 윤 대통령 [유레카] 4.

‘지지율 필연적 하락의 법칙’과 윤 대통령 [유레카]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5.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