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글로벌로지스 본사 앞에서 열린 ‘롯데택배 불법적 택배접수중단’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롯데택배 노동자가 귀에는 핸즈프리 이어폰을 꽂은 채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대학의 컴퓨터 과학 수업에서 하루에 수백만개의 물건을 배달하는 알고리즘을 짜는 과제를 내고서 “단, 배달하는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보면 어떨까. 학생들은 알고리즘 과제를 하다가 이 사회 깊은 곳의 ‘버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하루에 물건을 400개쯤 배달하는 택배기사들이 연달아 사망하는 것을 보면 택배 알고리즘은 그 모든 물건이 결국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실리고 사람 손에 들려서 소비자 문 앞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과로로 몸과 마음이 소진된 상태로 물건을 배송하던 기사가 호흡곤란으로 숨지는 바람에 택배가 멈출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알고리즘은 택배기사의 몸을 물류, 즉 물건의 흐름 바깥으로 치워버린다. 택배 알고리즘은 물건을 분류하고 싣고 내리고 들고 다니는 사람을 배제함으로써 가장 빠르고 가장 편하다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빠르고 정확한 배달은 택배기사가 사망하지 않는다는 조건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진실을 반영하는 알고리즘은 짤 수 없는가. 택배 알고리즘을 가르치고, 배우고, 개발하고, 사용하는 모든 주체가 이 시스템에서 사람이 죽을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는가. 대학의 컴퓨터 과학 수업에서 하루에 수백만개의 물건을 배달하는 알고리즘을 짜는 과제를 내고서 “단, 배달하는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보면 어떨까. 학생들은 알고리즘 과제를 하다가 이 사회 깊은 곳의 ‘버그’(프로그램 설계 오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좋은 학점을 받기가 쉽지 않은 과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불가능한 과제는 절대 아니다. 물류기업과 알고리즘 설계자는 이미 택배기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볼 수 있다. 택배기사가 몇 걸음을 걷는지, 계단을 몇 개쯤 오르는지, 그러면서 에너지를 얼마나 쓰는지 추적하고 계산할 능력이 있다. 택배기사 본인보다 더 정확하게 알 수도 있다. 또 사람이 장기간에 걸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뛰어다니면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지에 대한 의학 데이터를 얻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데이터를 종합하면 택배기사가 언제쯤 쓰러질지 예상할 수 있고, 그러면 언제쯤 작업을 멈추어야 하는지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배달하는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한다”는 단순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알고리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망한 택배노동자 김원종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일하던 얘기를 하며 “밥 먹을 시간 좀 주십쇼, 밥 먹을 시간”이라고 호소했다. 그가 보기에 아들의 일은 “뛰어다녀, 뛰어다녀…” 한가지였다. 밥 먹을 시간, 쉴 시간을 주는 것. 뛰어다니다가 죽지 않도록 하는 것. 택배 시스템을 굴리는 알고리즘 속에 먹고 자고 일하는 사람을 넣어 다시 짜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은 현재 가장 절박한 알고리즘 윤리 문제다. 추상적 윤리 논쟁이 아니라 정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시스템의 해악에 대한 문제다. 택배기업의 임시 조치나 택배 주문자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 시스템 자체를 새로 설계하는 일이다. 알고리즘을 다시 짜자는 것은 사회를 다시 짜자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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