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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의 눈] 적폐 개혁,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 홍성수

등록 2020-10-22 16:18수정 2020-10-23 02:38

적폐청산의 열망이 정권을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는 당파적 이익으로만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집권한 ‘사람’이 누구여도 쉽게 권력을 남용할 수 없는 법과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다.

홍성수 ㅣ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적폐청산의 기대를 안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훌쩍 넘었다. 정권 초기 검찰 수사를 통한 적폐청산에 집중했던 것은 의미가 있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인적 청산을 넘어 제도 개혁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지난 총선에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개혁의 완수를 지지하는 정치적 선택지를 골랐다. 대통령에 대한 견고한 지지율과 압도적 국회 의석, 이제 모든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불가역적 개혁의 핵심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본적인 법과 제도를 가다듬는 것이다. 권력기관의 힘을 분산시켜 권력남용의 가능성을 막고, 인권보장을 위한 기본적인 법과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 주요 권력기관의 개혁,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낙태죄 폐지, 전교조 합법화, 성소수자·난민·이주자 등 소수자 인권 보호, 사형제 폐지, 표현의 자유 보장 등 우리에게는 해묵은 과제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대부분 이명박·박근혜 시절 답보상태였거나 후퇴했던 문제들이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에 대한 개혁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권한이 상당 부분 경찰로 넘어갔다. 마지막 퍼즐인 국정원 대공수사권까지 경찰로 이양될 예정이다. 그런데 국정원과 검찰의 힘을 빼는 개혁은 자치경찰제, 수사-행정경찰 분리, 시민통제 강화 등 철저한 경찰개혁을 전제한 것이었다. 하지만 순차적으로 진행될 거라는 약속을 믿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언제까지 이대로 내버려둘 것인지, 차별금지법은 이번에도 힘든 것인지 점점 초조해진다.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입법 움직임이 있지만, 국가보안법은 정부도 국회도 관심 밖의 문제다. 참여정부가 이 두 법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그때의 교훈은 그래서 다시는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가 아니라, 이번에는 시행착오 없이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형제 폐지는 이슈화된 적조차 없었다. 입법적 조치가 부담스럽다면 대통령이 모라토리엄(중단) 선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명박·박근혜 시절 틈만 나면 사형 집행 재개 카드를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낙태죄, 전교조 합법화는 헌법재판소가 숨통을 틔워줬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헌재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치고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중요한 정치적 사안을 사법 판단에 맡기는 일이 빈번해질수록 민주주의와 공론장의 힘이 약화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36개월 교도소 합숙근무를 하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동안 좋은 대안이 많이 제시됐는데, 실망스러운 선택지가 아닐 수 없다. 낙태죄는 헌재 결정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반영하는 쪽으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낙태죄 폐지운동의 성과가 이런 식으로 정리되면 안 된다. 성소수자 문제는 립서비스조차 중단된 지 오래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이 있었다. 실언이었든 오해였든 간에 임기 중에 어떻게든 풀고 넘어가길 바랐으나 점점 기대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 트랜스젠더 군인 문제는 국제인권법 위반이라는 유엔 권고까지 나왔지만 정부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난민·이주자 정책은 예전보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시민의 입을 틀어막았던 이명박·박근혜 시절의 그 끔찍한 경험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가짜뉴스를 잡겠다고 내놓았던 여러 조치나,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이 소송전을 불사하는 모습을 보면, 표현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그때 그 결연한 의지가 어디로 귀결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하다.

코로나19 방역은 성공적이지만 아쉬움도 있다. 확진자 동선 공개와 광범위한 위치추적, 집회 제한 등 과도한 인권침해성 조치들이 과연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의문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점은 이해되어야 하지만, 어느 순간 예외적 조치가 일상화되어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와중에 테러방지법 개악까지 추진된단다.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감행했던 결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적폐청산의 열망이 정권을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는 당파적 이익으로만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집권한 ‘사람’이 누구여도 쉽게 권력을 남용할 수 없는 법과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연말이고, 내년 봄이면 대선 국면이 시작된다. 어쩌면 이번 겨울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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