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심채경의 랑데부] 우주로부터의 음악 ‘외롭고 높고, 그러나 단단한’

등록 2020-10-08 16:37수정 2020-10-09 02:41

심채경ㅣ천문학자

우주비행사는 왜 ‘톰 소령’의 노래를 부르며 우주에서 머무는 시간을 채워나가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우리가 죽음에 대해 논하고 전쟁 영화를 볼 때 오히려 죽음과 전쟁의 공포를 자신의 삶과 분리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주정거장에 오래 머무르다 온 우주비행사가 지구에 돌아온 뒤 겪는 흔한 고충 중 하나는 눈앞에 둔 물건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우주정거장에서는 눈앞에 펜을 가져다 놓은 뒤 손을 떼고 메모지를 찾아도 펜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지구의 중력은 우주비행사의 손길을 떠난 펜이 그 자리에 머무르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손을 떼는 순간 바로 떨어져 버린다.

우주정거장에서는 악기도 둥둥 띄워놓을 수 있다. 오랫동안 들거나 메고 있어도 무겁지가 않다. 그리고 재밌는 일도 생긴다. 예를 들어, 떠 있는 상태로 플루트를 연주하면 플루트에서 나오는 공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우주에서 관악기를 연주할 때는 벽에 등을 기대고 있어야 한다.

최초로 우주에서 악기를 연주한 기록은 1965년이다. 제미니 6호와 7호가 예정된 랑데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6호에 타고 있던 우주비행사들이 하모니카와 작은 종으로 ‘징글벨’을 연주하자 7호의 우주비행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제미니 우주선의 내부는 우주비행사 두 사람을 위한 좌석만으로 꽉 차는 비좁은 공간이기 때문에 하모니카나 팔찌 크기의 작은 종 정도만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주정거장은 작은 방 크기의 모듈이 여럿 붙어 있는 공간이므로 좀 더 큰 악기도 가져갈 수 있다. 기타, 색소폰, 전자 키보드 등 다양한 악기가 우주정거장에서 연주되었다. 합주를 위해 여러 악기를 동원하고 쓰레기통마저 드럼으로 활용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우주적 합주는 우주정거장 내의 밴드 연주에서 그치지 않았다. 2018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무르고 있던 독일의 우주비행사 알렉산더 게르스트(Alexander Gerst)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 온라인으로 참여해, 전자 키보드 밴드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합동 연주를 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촬영된 뮤직비디오도 있다. 캐나다의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라는 곡을 기타로 연주하고 노래도 불러 뮤직비디오 한 편을 만들었다. 아무도 없는 우주정거장의 공간에 어쿠스틱 기타 한 대가 붕 떠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사실 이 곡은 우주비행사가 부르기에 그리 유쾌한 노래는 아니다. 가사의 내용은 소유스호를 타고 우주로 떠나는 ‘톰 소령’이 지상관제소와 나누는 교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뒤로 갈수록 전개가 좀 이상하다. 처음엔 교신이 잘되었는데 어느 순간 끊어져 버렸는지 지상관제소는 하염없이 “톰 소령”을 부르고, 톰 소령은 “마지막으로 세상을 보니 지구는 푸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읊조린다. 사고가 있었다는 해석도 있고 그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영영 우주 미아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어느 쪽이든 우주비행사에게 권하고 싶은 내용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작가 김중혁의 소설 <나는 농담이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주에 나갔다가 불운에 맞닥뜨린 우주비행사 이일영은 상황을 정상으로 되돌려보려고 애쓰지만 결국에는 계기판의 잔여 산소량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며 어느 관제소도 실시간으로 들어주지 못하는 교신 기록만 남기다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우주비행사가 우주정거장 안에서 ‘스페이스 오디티’를 부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다. 뮤직비디오 속 크리스 해드필드의 표정도 밝지만은 않다. 우주비행사는 왜 ‘톰 소령'의 노래를 부르며 우주에서 머무는 시간을 채워나가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우리가 죽음에 대해 논하고 전쟁 영화를 볼 때 오히려 죽음과 전쟁의 공포를 자신의 삶과 분리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조금 덜한, 그저 잠시 느껴보는 것뿐임이 분명한 가상의 두려움은 우리의 내면을 조금 더 단단하게 해준다지 않는가.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 악기를 가지고 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긴 격리 기간 동안의 외로움과 쓸쓸함, 두려움과 떨림, 오래 머무르기에는 턱없이 좁은 공간이 주는 갑갑함을 이겨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바람에 반년 넘게 준격리 상태인 지금의 지구인들에게도 유효하다. 우리는 우주를 떠다니는 ‘지구’라는 우주정거장에 머무르고 있으니 말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참모들은 왜 윤 대통령 회견 말리지 않았나 1.

참모들은 왜 윤 대통령 회견 말리지 않았나

[사설] “이런 대통령 처음 봤다”, 이젠 더 이상 기대가 없다 2.

[사설] “이런 대통령 처음 봤다”, 이젠 더 이상 기대가 없다

‘엿장수’ 대통령에 ‘면주인’ 총리…국정 제대로 될 리가 3.

‘엿장수’ 대통령에 ‘면주인’ 총리…국정 제대로 될 리가

삼성전자 위기론을 경계한다 [뉴스룸에서] 4.

삼성전자 위기론을 경계한다 [뉴스룸에서]

청년도 언젠가 노인이 된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5.

청년도 언젠가 노인이 된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