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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과거청산이 먼저”…북, 아베의 ‘대북 접근’을 걷어차다

등록 2020-10-07 04:59수정 2020-10-07 09:23

길윤형의 신냉전 한일전 _07

‘북-미 싱가포르 회담’에 앞서 2018년 5월23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회담에 나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워싱턴/EPA 연합뉴스
‘북-미 싱가포르 회담’에 앞서 2018년 5월23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회담에 나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워싱턴/EPA 연합뉴스

2018년 8월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의 포토세션 중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악수를 청해 이야기를 나눴다. 싱가포르/연합뉴스
2018년 8월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의 포토세션 중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악수를 청해 이야기를 나눴다. 싱가포르/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미 한·미 양국과 정상회담을 하고 중·러 등 우호국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상황에서 까다로운 일본과 ‘답 안 나오는’ 납치 문제로 공방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일본의 독자적인 대북 접근은 허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일본이 ‘모기장 밖’(蚊帳の外)에 놓여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일본 기자)

2018년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계기로 동아시아의 옛 냉전 구조를 허무는 남북회담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실현되자, 일본 내에선 이 ‘격변의 흐름’ 속에서 우리만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재팬 패싱’ 논란이었다. 아베 신조 총리는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4월27일, 자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간이 기자회견에 임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쏟아진 ‘재팬 패싱’ 관련 돌직구 질문에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격렬한 언어로 이를 부인했다. “지난 방미 때도 트럼프 대통령과 11시간 이상 충분히 얘기했고, 기본적 방침에 대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도 기본적 방향에 대해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때때로 ‘강한 불안’을 내포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일본에서 재팬 패싱 논란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는 아베 총리 자신이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잇따라 만나고, 북-미 정상이 사상 첫 ‘세기의 회담’을 마친 뒤에도 북-일 간 의미 있는 접촉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에겐 정치가로서 꼭 실현해야 할 ‘꿈’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아직 우익의 젊은 기대주에 불과했던 아베가 2006년 9월 1차 집권 때 첫 전후 태생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전임 고이즈미 정권 때 보여준 납치 문제에 대한 ‘강경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납치 문제의 해결은 그가 자주 ‘필생의 과업’이라 말해온 개헌과 함께 자신이 거친 정치의 세계를 돌파해낼 수 있었던 ‘목적’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애초 북-미 접촉에 대한 아베 총리의 입장은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는 있었다. 일본은 2014년 5월 한·미의 곁눈질을 받아가며 북한과 “일본인 납치자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해 일본인에 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의 ‘스톡홀름 합의’에 서명했다. 하지만 북한은 특별조사위원회까지 만들어 대대적인 재조사를 벌인 뒤에도 “생존 납치 피해자는 없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에 대해 일본이 반발하면서 북한의 조사 보고서 수령을 거부하며 일부 완화했던 독자제재를 복원하자, 북한 역시 2016년 2월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스톡홀름 합의의 파기를 선언했었다. 대화의 실패를 통해 북-일 사이 상호 불신의 골은 깊어만 갔다.

그렇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바랄 순 없는 일이었다. 아베 총리는 5월14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납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최종적으로 일-조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정상회담은 납치 문제의 해결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진 6월7일 미-일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선 이 문제에 대한 본인의 감정을 솔직히 쏟아냈다. “니가타란 일본해(동해)에 면한 아름다운 항구에 사는 겨우 13살인 소녀(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요코타 메구미)가 북한에 납치됐다. 그로부터 41년, 가족들은 오로지 (아이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계속 기다리고 있다. 양친도 고령이 되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부친인 시게루는 올해 6월5일 사망했다.) 일본 국민들은 (부모님이) 건강할 때 메구미상을 다시 두 손으로 안아볼 수 있도록, 모든 납치 피해자가 일본에 돌아오는 날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납치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북한과 직접 마주해 얘기하고 싶다.” 아베 총리가 제 입으로 북-일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고 처음 언급한 순간이었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뒤에 열리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납치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강하게 약속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이 ‘세기의 회담’을 자신을 위한 거대 홍보 이벤트로 생각했던 트럼프가 얼마나 진지한 자세로 납치 문제를 거론했는지 알 수 없다. 결국 6·12 싱가포르 공동합의문에 기대했던 납치 문제에 대한 언급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날 밤 총리관저 관계자는 <아사히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이제 우리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묘한 견해를 밝혔다. 일본이 드디어 칼을 뽑아 든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틀 뒤인 14일 총리관저로 요코타 메구미의 모친인 사키에 등 납치피해자가족회 관계자들을 불러 “이번 기회를 살려 일본이 북한과 직접 마주해 문제를 풀어 가겠다고 결의했다”고 말했다. 같은 날 고노 다로 외무상은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4·27 판문점 선언과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통해 “비핵화에 대해 명확히 서약”했으니 이젠 북-일 대화를 해도 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일본의 방침 변화의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 국민들도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아사히신문>이 16~17일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 국민 67%가 북-일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에 찬성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정상회담을 위해선 북한과 고위급 접촉을 시도해야 했다. 이 무렵 일본은 북한과 베이징 대사관을 통한 ‘베이징 루트’, 기타무라 시게루 당시 내각정보관의 접촉 통로(한국으로 치면 국가정보원 채널) 등을 갖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14일 시미즈 후미오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참사관이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함께 참석한 김용국 북한 외무성 군축 및 평화연구소장과 접촉하는 등 재빠르게 움직였다. 일본 외무성은 26일엔 북동아시아과를 한국을 담당하는 제1과와 북한을 담당하는 제2과로 나눠 앞으로 이어질 북-일 정상회담에 대비하는 태세를 갖추기도 했다.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7월이었다. 기타무라 내각정보관이 이 무렵 김성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과 베트남에서 극비 회동을 했다는 사실이 한달여 뒤인 8월28일 미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공개됐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않는 묘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북한의 반응은 썰렁할 뿐이었다. 그동안 일본 외무성은 북한 당국과 접촉할 때 다롄·홍콩 등 제3국을 활용하는 ‘외무성 루트’를 활용했지만, 이번엔 이것이 기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쏟아진 것은 북한 특유의 ‘말폭탄’이었다.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한 6월부터 8월까지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8건의 대일 논평을 쏟아냈다. “연초부터 우리의 주동적이며 평화 애호적 조치에 의해 화해와 긴장완화 국면에 들어선 지역 정세흐름을 제일 못마땅해하면서 제동을 걸려고 놀아댄 일본의 추태는 입에 담기조차 역겹다.”(6월19일) “일본이 케케묵은 ‘납치 문제’를 집요하게 떠들고 있는 것은 조선 인민에게 저지른 특대형 범죄를 가리우고 과거청산을 회피해 보려는 부질없는 모지름에 불과하다.”(6월26일) “일본이 대화에 대해 떠드는 것은 진정으로 조-일 관계 개선을 바래서가 아니다. 격변하는 조선반도 정세흐름에서 밀려난 궁색한 처지를 모면하고 뒤늦게나마 끼어들어 한몫 보려는 간특한 타산에 따른 것이다.”(7월3일)

일본이 대북 접근에 나서며 제안한 ‘당근’은 북한이 본격 비핵화에 나설 경우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에 대해 7월18일 논평을 통해 “좀스럽고 유치한 나발”이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 연속 담화에서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엉뚱한 납치 문제 놀음은 그만두고 “일본이 먼저 과거청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파탄의 날이 왔다. 8월3일 저녁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환영 만찬 자리를 빌려 고노 외무상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접근했다. 아무런 사전 예고 없는 ‘매복습격’에 가까운 접근이었다. 이로써 고노 외무상은 선 채로 겨우 2분에 걸쳐 간단한 의견교환을 할 수 있었다. 이후 고노 외무상은 일본 기자들과 만나 리 외무상에게 “우리의 생각과 기본적인 입장을 전했고, 이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말했다. 대화의 더 자세한 내용을 물으려 일본 기자들이 아홉차례나 질문을 쏟아냈지만, 고노 외상은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미 한·미 양국과 정상회담을 하고 중·러 등 우호국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상황에서 까다로운 일본과 ‘답 안 나오는’ 납치 문제로 공방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일본의 독자적인 대북 접근은 허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실의에 빠진 일본에 묘한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북한이 애초 예상과 달리 비핵화에 극히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일본은 다시 깊은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 8회에선 폼페이오의 3차 방북 실패를 통해 확인된 비핵화에 대한 북-미의 입장차와 이를 돌파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다룹니다.

길윤형 | 통일외교팀 기자.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초년 기자 시절부터 강제동원 피해 문제와 한-일 관계에 관심을 갖고 여러 기사를 써왔다. 2013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한겨레>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아베 정권이 추진해온 다양한 정책을 가까이서 살펴봤다.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아베는 누구인가>, <26일 동안의 광복> 등을 썼고,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 <아베 삼대>를 번역했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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