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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기더기’ 오명이 억울하다면 / 유선희

등록 2020-09-27 18:01수정 2020-09-27 20:14

유선희 ㅣ 문화팀장

‘기레기(기자+쓰레기), 기더기(기자+구더기).’

요즘 누리꾼들이 기자를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특정 기자가 아닌, 직군을 통칭하는 말이니 한번 꾹 참고 넘긴다. 그런데 이건 어쩌지? ‘좆선일보, 종양일보, 똥아일보, 한걸레, 견향신문, 엠병신…’ 보수든 진보든, 신문이든 방송이든, 국민의 조롱과 비난에 예외가 없다. 꾹 참았던 불덩이가 솟구친다.

한술 더 떠 기자를 법률로 ‘정죄’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본격화하고 있다. ‘악의적 오보’(가짜뉴스)를 낼 경우, 손해액의 5배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지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상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것이다. “가짜뉴스나 허위정보를 이용한 보도가 범람하지만, 피해에 대한 현실적인 책임 추궁 절차나 억제책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란 법무부의 설명에 말문이 막힌다.

억울하다. 밤낮없이 ‘물먹지(낙종) 않기 위해’ 치열하게 기사를 썼을 뿐인데, 돌아오는 것은 누리꾼의 비아냥이라니. 게다가 사회정의를 위해 쓴 기사가 도리어 사회적 해악이니 돈으로라도 배상하라고? 아니, 이게 무슨 개 풀 뜯는 소리야.

자, 여기까지. 이것이 현재 ‘3만1364명’(2019년 한국언론연감)이나 된다는 우리나라 기자 대다수가 최근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법무부 입법예고가 나오자 모든 언론이 대동단결해 “표현의 자유 억압”, “과잉규제 우려”, “정치적 목적에 의한 남용”, “언론의 비판 기능 입막음” 등의 표현을 쓰며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디지털 나치법”이라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등장했다.

사실, 이런 우려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명예훼손죄(형법)나 손해배상 책임(민사)을 물을 수 있는 법이 있고, 그에 앞서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정정보도와 반론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구제책이 이미 마련돼 있다. 과중한 금전적 배상 청구가 남발되면 정치인이나 기업인의 부정부패 등에 관한 보도 자체가 위축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짜뉴스’나 ‘악의적 보도’, ‘(사실확인을 하지 않은) 중과실’ 등은 판단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단적인 예로 ‘촛불혁명’을 통한 탄핵의 물꼬를 튼 <한겨레>의 최순실 의혹 보도가 처음부터 ‘완벽한 사실 확인’을 통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사후적으론 ‘사실’이었으나, 법무부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 당시엔 ‘악의적 가짜뉴스’로 치부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을 둘러싼 언론과 일반 국민의 체감온도 차이는 아프리카 사하라사막과 시베리아 툰드라만큼이나 크다. 학계와 언론시민단체에서조차 “오죽하면 징벌적 배상을 운운하겠냐”는 한탄이 나온다. 앞서 정청래 의원이나 윤영찬 의원이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을 때, 찬성 여론이 81%(<미디어오늘>-리서치뷰)에 이르렀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최근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보자. 언론중재위에 제소된 기사 13건 중 11건에 대해 정정 및 반론보도 등 조정 결정이 났다. ‘하룻밤 3300만원 사용…정의연 수상한 술값’(<한국경제>), ‘윤미향이 심사하고 윤미향이 받은 정부지원금 16억원’(<조선일보>), ‘아미가 기부한 패딩 이용수·곽예남 할머니 못 받았다’(<중앙일보> <한국일보>) 등은 사실상 모두 ‘오보’였던 셈이다. 그뿐만 아니다. <조선일보>의 ‘조국 전 장관 딸 세브란스 인턴 요구’나 ‘코로나 난리통에 딸기밭 간 민노총’ 등의 기사는 당사자 확인 전화 한 통 없이 쓴 ‘무책임한 오보’의 정점이다.

결국 무분별한 단독 경쟁, 진영 논리에 기반한 확증편향, 치밀한 검증 없는 수사기관 받아쓰기 등 우리 언론의 잘못된 관행이 ‘언론 불신지옥’이라는 말을 만들고 ‘언론개혁’에 관한 국민 열망을 드높인 셈이다. <한겨레> 역시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에 의한 처벌, 금전을 통한 배상보다 언론의 자성이 앞서야 하는 이유다. 최소한 ‘○○○ 기더기’라는 오명은 벗어야 하지 않겠는가.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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