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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집단소송’ 15년 간 10건 / 김영배

등록 2020-09-27 15:02수정 2020-09-27 19:31

주가조작을 비롯한 증권 분야에만 한정된 집단소송제가 2005년 국내에 도입된 뒤 실제 소송이 제기된 건 4년만인 2009년 4월이었다. 굴삭기 부품업체 진성티이씨가 ‘키코’(통화 파생상품) 손실을 숨긴 채 실적을 거짓 공시해 이후 주가하락에 따른 피해를 보았다며 투자전문회사인 서울인베스트가 제소한 건이다. 이 사건은 그해 10월 원고와 피고 간 화해로 마무리됐다.

집단소송 건이 법원의 본안 판단 심판대에 올라 원고 승소로 확정된 첫 사례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나서 나온 도이치뱅크 주가조작 사건 판결이다. 피해자 494명 가운데 5명이 2012년 3월 소송을 걸어 2017년 1월 승소 판결을 받았고, 7월 도이치뱅크의 항소 취하로 매듭지어졌다. 집단소송제에선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함께 구제를 받는다.

증권 집단소송이 대법원까지 이어져 원고 쪽이 이긴 첫 사례는 올해 2월에 나왔다. 상장 폐지된 ‘씨모텍’의 유상증자를 주관한 디비(DB)금융투자(옛 동부증권)를 상대로 투자자 186명이 2011년 10월에 제기해 9년 만에 얻어낸 결과였다.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 뒤 첫 소송, 첫 승소, 첫 대법원 승소 판결의 사례로 짐작할 수 있듯 실제 소송이 벌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제도 도입 뒤 15년 동안 집단소송 제소 사례는 10건(병합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2건은 집단소송 본안 판단 전 거치게 돼 있는 ‘소송허가’ 결정을 받지 못해 중단됐다. 소송허가를 받은 8건 중 최종 판결에 이른 것은 아직 5건(화해 종결 3건, 원고 승소 2건)뿐이다. 2017년 9월 이후엔 제소 사례가 아예 없다.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 당시 소송 남발을 우려하던 목소리가 무색하다.

법무부가 지난 23일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를 위한 상법 개정안과 함께 집단소송제 확대를 위한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28일 입법 예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용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라돈 침대 사태, 자동차 배기가스 조작 등 피해자가 50명 이상인 사건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소송 관여자 외 나머지 피해자들도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 때처럼 소송 남발을 초래할 것이란 주장이 또 쏟아지고 있다. “기업에 핵폭탄급 부담”, “숨 막히는 기업 규제”, “기업 아우성 외면”이라는 식이다.

소송 대상의 전면 확대에 소송 절차 간소화, 소비자 쪽의 입증 책임 완화 방향을 고려할 때 제소 사례가 늘 것이란 예상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집단소송의 속성에 비춰, 실제 남소 가능성이 클지는 의문이다.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는 “(집단소송에선) 기업의 불법행위를 입증할 증거가 상대방인 기업에 독점돼 있어 승소가 불확실한 반면, 원고 측의 소송 비용은 많고, 소송허가 절차 등으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한다. 남소 공포에 빠질 게 아니라 소비자 권익 강화, 기업의 신뢰 제고라는 시대적 과제에 적응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김영배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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