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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유류분 소송 / 김회승

등록 2020-09-20 14:36수정 2020-09-21 02:08

엄청난 갑부가 전 재산을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유언으로 물려준다. 졸지에 벼락부자가 된 상속인은 인생역전의 기회를 맞는다.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다. 현실에선 상속 권리자의 동의 없이 자기 재산을 100% 마음대로 상속할 수 없다. 민법 1112조는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은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유류분’(遺留分)으로 규정하고, 유언보다 우선해 보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1977년 도입된 이 제도는 양성평등의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장남이 유산을 독식하는 관행을 타파하고 여성 배우자·자녀의 정당한 상속분이 일방적인 유언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유류분 제도의 개정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장남 우선 관행이 지금은 많이 달라졌고 가족 형태도 다양해지는 등 애초 입법 취지가 소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직계 존비속한테 과도한 유류분이 보장돼 여성 배우자의 상속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평소 부양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재산 형성에도 기여한 바 없는 자녀나 불화가 있는 형제에게도 강제로 유산을 상속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많다. 유류분반환청구소송도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소송 건수는 1500여건으로 10년 전보다 5배 이상 이상 늘었다.

개정론자들은 유류분 권리가 ‘신의칙 및 형평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라고 변론하지만, 이런 이유로 그 권리를 배척한 판결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2010년 헌법재판소 역시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가 우선”이라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국회에서는, 직계비속의 법정 상속분을 지금보다 더 줄이고,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에서 제외하며, 재산 기여도가 없는 이들은 일정 기간 연락이 끊기면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왔다.

최근 40억원대 연봉을 받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어머니 유산 중 자신의 유류분을 내놓으라며 동생들을 상대로 10억원대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부모 형제 간 복잡한 속사정은 알 도리가 없지만, 자신의 몫만큼 자식 도리는 했는지 궁금하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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