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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변호사 김재련 / 고경태

등록 2020-09-11 04:59수정 2020-09-11 19:48

고경태 ㅣ 오피니언 부국장

2020년 7월13일은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린 날이었다. 서울시청을 떠난 운구차가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 도착해 화장이 진행되던 오전 11시께, 김재련이라는 이름이 뉴스에 떴다. 피해자 지원단체와 변호인의 기자회견이 3시간쯤 남아 있을 때였다. 김재련은 그날 오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피해자의 변호사였다. 에스엔에스(SNS)에서 처음 접한 논평은 악평이었다. 관종이라 했다. 정치적 인물이라 했다. 서지현 검사 변호하다 문제 생겨 그만둔 변호사라고도 했다.

두 달이 지났다. 폭풍의 시간이었다. 피해자 쪽에선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이라고 사건을 정의했지만, 이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적 음모에 의한 기획 미투로 추정하거나 전혀 다른 사건의 본질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이런 추정과 믿음을 굳히는 데 변호사 김재련은 적절한 구실이 되었다. ‘이상한 변호사가 순진한 피해자를 꼬드겨 박원순 시장을 고소했다’는 프레임은 확대재생산되었다. ‘광기’라는 단어도 나왔다. 악녀, 마녀의 이미지가 투사되었다.

사실관계를 알아봐야 하겠다는 문제의식이 이 칼럼의 출발점이었다. 피해자 지원단체 관계자들과 접촉하다가 덜컥 김재련 변호사를 만나 사건에 관한 인터뷰도 하게 되었다. 이 글엔 인터뷰 일부 내용이 녹아 있다.

그의 변호사 경력과 관련해 내가 아는 건 서지현 검사와 김지은씨 사건이었다. 앞의 것은 서 검사 요청으로 중간에 그만두었고, 뒤의 것은 당사자한테 의뢰받았으나 본인이 변호를 포기했다. 미증유의 민감한 사건에서 대리인에 관한 논쟁이 본질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로 세운 화해·치유재단 이사를 지냈는데, 그때 발언과 관련한 논란이 있었다. 그 직전엔 2년간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개방직)으로 일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매체는 단독보도라며 김 변호사가 한 미투사건 당사자의 이혼소송을 담당했다는 의혹 등을 제기했다.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번 사건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에게 호감을 느끼든 비호감을 느끼든 개인의 자유다. 지금 가해지는 공격은 대개 ‘진영’에 대한 불편함과 여기서 비롯된 비호감, 그리고 피해 사실을 인정해주기 싫은 마음 탓이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여성단체 사람들은 그를 ‘성폭력·아동 인권변호사’라고 부른다. 호칭이 맞는지 김재련 변호사에게 물었다. “아뇨. 이혼변호사라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실제 변호사로서 생업은 이혼소송이다. “하지만 보람을 느끼는 것은 여성, 아동 인권 관련 사건들이에요. 변호사여서 이런 걸 할 수 있는 거죠.” 페미니스트냐고 물었다. “페미니스트 아니에요. 저는 로여(변호사)예요. 인권변호사도 아니에요. 인권과 관련된 이슈에 관심이 많은 그냥 변호사예요.” 2002년 사법연수원 2년차 때 이명숙 변호사 사무실에서 시보 생활을 했다. 여의도 가정법률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을 돌며 일을 배우다가 이 분야에 발을 담갔다.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이처럼 많은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대 의대생 성폭행 사건(2011년), 신분증 확인 안한 모텔 주인 손해배상 청구소송(2017년), 태권도 미투 사건(2018년) 등을 맡았다. 현재 한국에서 성폭력피해사건 무료법률지원을 가장 많이 하는 변호사 중 하나다.

피해자 지원단체에서는 사건 초기인 7월 20일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 쪽에 변호인단 참여를 요청했다. 민변 여성인권위는 두 차례에 걸쳐 이 사안을 논의에 부쳤으나 불참하기로 했다. ‘실무적인 이유’라고만 밝혔다. 민변 여성인권위는 7월14일 “성희롱과 성추행 피해를 밝힌 고소인의 용기를 지지한다”고 성명을 냈던 단체다. 민변이 합류했다면 변호인이 공격을 덜 받았을까?

김 변호사는 화해·치유재단 이사를 지냈지만, 함께 이번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는 정의기억연대 현직 이사다. 두 단체는 대척점에 있었다. 분위기가 바뀐 측면도 있지만, 둘 사이에 ‘위안부’ 문제는 논외다. 그러니까, 정치적 프레임은 지겹다. 변호사는 피해자가 선택했다. 고소도 피해자의 뜻이었다. 피해자 주변을 향한 근거 없는 폄훼와 공격은 진실을 가리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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