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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복비’ 아우성/ 김영배

등록 2020-09-06 14:52수정 2020-09-06 19:38

부동산 중개사무소의 옛 이름 ‘복덕방’의 뿌리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후기 서울 인구가 늘어나고 관직을 세습함에 따라 집을 사고파는 일이 늘어났다. 가옥 매매를 알선하는 곳을 복덕방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19세기부터로 추정된다.”(2018년 9월 <한겨레>, 역사학자 전우용) 이태준의 소설 <복덕방>(1937년)이 구한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에서도 복덕당의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복덕방이란 말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는 변곡점은 1985년이었다. 제1회 부동산 공인중개사 시험이 치러진 때다. 이전까지 집이나 땅 거래 알선은 소개영업법에 따라 신고제로 운영되다가 그 즈음 부동산중개업법 제정 뒤 허가제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복덕방은 부동산 중개사무소, ‘복덕방 영감’은 공인중개사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0회까지 자격시험에 합격한 이는 45만35명이며, 이 가운데 개업 중인 중개사는 2일 현재 10만9882명이다. 4명 중 3명꼴로 장롱 면허인 셈이다.

복덕방은 아련한 옛말로 전락했지만, 여기서 비롯됐을 ‘복비’의 언어적 생명력은 여전하다. ‘중개수수료’나 법정 용어인 ‘중개보수’보다 낯익고 자주 쓰이는 듯하다. 복비는 중개보수를 다룬 신문 기사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협회는 중개업자 대신 중개사로, 중개업소 대신 중개사무소로, 중개수수료(또는 복비) 대신 중개보수로 써달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복비라는 말만큼은 친숙함과 경제성 덕에 생명력을 오래 유지할 것같다.

집값, 전셋값 급등 탓에 복비 부담이 너무 커졌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매매 9억, 전세 6억원을 넘어서면 두 배 수준으로 크게 뛰는 수수료율 체계가 현실에 맞지 않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에 덧붙는다. 국토교통부 쪽에서도 개선 뜻을 비친 바 있다.

복비로 일컬어지는 중개보수는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과 각 시·도별 조례에 따라 결정된다. 서울시의 경우 9억원 이상 매매 때 집값의 0.9% 안에서 중개사와 협의해 정하게 돼 있다. 6억~9억원 0.5%, 2억~6억원 0.4%로 거래금액에 따라 상한 요율을 달리 적용한다. 임대차 거래에선 6억원 이상 주택 0.8%, 3억~6억원 0.4%, 1억~3억원 0.3%로 돼 있다.

상한률대로 적용하면 중개보수가 6억원 짜리 집 매매 때 300만원, 임대 거래 때는 480만원에 이른다. 2015년 최고요율 적용 구간을 ‘매매 6억, 전세 3억원’에서 각각 ‘9억, 6억원’으로 바꾼 뒤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에 서울 지역 아파트 중윗값이 두 배가량으로 치솟았으니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올법하다. 중개보수 체계에 얽힌 문제점은 지난달 국회에서도 거론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고민해보겠다”고 답하기에 이르렀다.

복덕방에서 ‘복’은 신이 내려주는 것, ‘덕’은 사람이 베푸는 것이라 했다는 데 복비의 현실이 복이나 덕과는 멀어 보인다. 공인중개사협회 쪽의 간청대로 복비라는 말도 이젠 복덕방과 함께 세월의 물결에 흘려보내야 할 모양이다.

김영배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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