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만에 다시 달에 사람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위해 미항공우주국은 여러 가지 음악을 골라두었다. 가히 지구 최강이라 할 만한 팬덤을 보유한 방탄소년단(BTS)의 곡이 일찌감치 우주 디제이의 목록에 올랐다. ‘소우주’와 ‘134340’ 그리고 멤버 알엠(RM)의 ‘문차일드’. 우주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선택되었다.
심채경 ㅣ 천문학자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동료들과 함께 화성 탐사에 나섰다가 불운한 사고로 홀로 화성에 낙오된다. 참담한 상황에서도 마크가 유머를 잃지 않으며 오래 생존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동료의 개인 물건 속에서 찾아낸 유에스비(USB) 메모리 속 음악 파일이 큰 역할을 했다. 70년대 디스코 음악만 잔뜩 골라둔 동료의 음악 취향에 질색하면서도 그는 시종일관 음악을 들으며 공포와 우울과 고독을 버텨낸다. 다른 행성에 가본 적은 없어도, 낯선 타지에서 두려움과 떨림, 떠나서 머무르고 되돌아오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피로를 음악으로 달래본 경험은 많다.
미항공우주국(NASA, 나사)이 달로 향하는 우주비행사를 위해 음악 재생 목록을 준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달에 사람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위해 나사는 여러 가지 음악을 골라두었다. 선곡 과정에서 지구인들의 추천도 받았는데, 가히 지구 최강이라 할 만한 팬덤을 보유한 방탄소년단(BTS)의 곡이 일찌감치 우주 디제이의 목록에 올랐다. 단순히 다수결에 따른 결정은 아니었다. 많은 후보곡 가운데 ‘소우주’와 ‘134340’ 그리고 멤버 알엠(RM)의 ‘문차일드’. 이렇게 우주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선택되었다.
‘소우주’와 ‘문차일드’는 제목부터 우주적인데 ‘134340’이라니 대체 무엇인가. 이 번호는 다름 아닌 명왕성의 또 다른 이름이다. 본래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었다가 2006년 8월부터 왜소행성으로 분류되는 바람에 ‘수금지화목토천해’까지 읊은 다음 잠시 숨을 멈추게 만드는 바로 그 명왕성이다. 행성보다 작은 소행성, 왜소행성들은 번호가 공식 명칭이다. 대개는 번호만으로 부르고, 별도의 이름이 있는 경우는 번호 뒤에 이름을 붙여 부른다. 그래서 이제 공식적으로는 명왕성을 ‘134340 명왕성’이라고 표기한다.
명왕성이라는 자연 속 천체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우리가 명왕성을 부르는 말이 바뀌었다. 대체 행성이란 무엇이기에 명왕성을 따로 떼어야 한다는 것인가.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는 이미 명왕성을 향해 지구를 떠나 긴 항해를 시작한 뒤였다. 뉴호라이즌스 탐사선을 운용하고 있는 천문학자들은 여전히 명왕성이 행성이라고 주장한다.
‘행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이제 천문학적 정의의 문제를 넘어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주제어로도 꽤 잘 어울린다. <명왕성>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명문 사립고 학생인 주인공은 친구들의 비밀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고 싶지만, 비윤리적인 입단 테스트를 요구받으며 거절당하고 낙오된다. 치명적인 경쟁 속에 소모되는 10대들의 처절한 세계가 ‘명왕성’이라는 단 세 글자의 제목으로 대치된다.
대학에서 교양 천문학을 가르칠 때, 수강생 중에 무명 래퍼가 있었다. 래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직접 곡도 쓰고 가사도 쓰는 친구였는데, ‘우주’를 소재로 하는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보라는 과제에 명왕성을 주제로 곡을 만들고 녹음까지 해서 제출했다. 객관적인 채점을 위해 부디 예술 작품만은 제출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건만, 래퍼 학생께서는 명왕성에 깊은 영감을 받았는지 평가상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며 꼭 받아달라고 했다. 하지 말라는 과제를 해 왔으니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었지만, 꽤 인상적이긴 했다. 지금쯤은 괜찮은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을까? 행성으로 인정받지 못한 명왕성과는 달리 이제는 음악인으로 분류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그의 길은 어떤 음악으로 채워져 있을까?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달에 꼭 달 과학자를 보내야 한다면, 그리고 그게 나여야만 한다면, 나는 그때 그 래퍼 학생이 제출했던 음악 파일을 우주 디제이에게 넌지시 건네볼까 한다. 행성이 아니지만 행성이었던 명왕성처럼, 과제로 인정할 수 없지만 과제였던 그 노래를 들으며, 우주 항해의 괴로움을 과제 채점의 괴로움으로 잊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024년, 다시 달로 향할 미국의 우주비행사는 비티에스의 노래를 들으며 우주를 항해할 예정이다. 우주에서 그들이 떠나왔던 지구를, 그 안에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 모두를 돌아볼 것이다. ‘한 사람에 하나의 별,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삶’이 모두 마지막 순간까지 무탈히 제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