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이와 그 어긋남에서 인간세계의 어두운 미래상을 보는 듯하다. 그 불안이 코로나 ‘빛무리’에 싸인 문명의 자신감 뒤에 파탄이 숨어 있음을 예감시킬지도 모른다. 나는 미래의 문명과 운명을 향한 조심스러운 인사로써 그 파탄이 유예될 수 있기를, 그것이 거리두기의 성찰로써 종말에의 두려움을 겸손하고 부드럽게 수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고 우리 땅도 절여놓은 지 반년이 넘었다. 그사이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으레 마스크를 쓰고 식당에서는 앞자리와 엇가게 앉고 내가 즐겨 보는 야구경기 관중들은 아예 없거나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이런 어색한 장면을 보기는 6·25 이후 70년 동안 별의별 일을 겪어온 내게도 낯설다. 어색한 것은 공공의 자리만도 아니다. 자가격리, 비대면, 무증상 감염, 기저질환이란 못 보던 말들이 생기며 ‘뉴노멀’ ‘언택트’ ‘턱스크’란 신조어와 ‘3t(test, trace, treatment)’의 새 약어가 돌고 기원전(BC)과 기원후(AD)가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역병 이후’(After Disease)로 달라지고 ‘팬데믹’ ‘케이방역’이 주목받고 ‘집콕’ ‘팔꿈치(주먹) 인사’ ‘화상 강의’ ‘무관중 경기’의 전례 없는 새 형태의 행사가 이루어진다. ‘2020년 현상’이랄 수밖에 없을 이 낯선 증상과 말 가운데 내가 볼수록 묘미를 느끼는 것이 ‘거리두기’란 말이다. 말대로는 공간적 개념으로 ‘거리두기’를 하라는 이 권고의 실제는 정이 갈 만한 사이인데도 ‘거리를 두고 사귀다’라는 심리적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새삼 찾아본 동아판 <새국어사전>에는 이 말이 나오지 않고 또 다른 동아판 <연세한국어사전>에는 표제어로 나오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다’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다’의 두 풀이를 주고 “사람 좋은 사업가로 소개된 이 사나이는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허물없이 지내는 그런 사이 같다”는 예문까지 보탰다.
우리가 방역지침으로 주의받는 ‘거리두기’는 여기에 ‘공간적 거리는 두되 마음은 더 가까이’라는 또 하나의 뜻을 보태는데 한 병원에서 “마음은 가까이, 거리는 멀리”란 멋진 안내문을 보았다. 밀접을 당연한 전제로 하는 공적인 ‘사회’나 실제의 ‘생활’과는 거리를 두되, 내면 심정으로는 더 가까이 어울리기를 권고하는 공간적·심리적 거리감의 상반된 충고를 하고 있었다. 이 중의적 어휘를 음미하는 중인 7월에 두 분의 장례를 보았고 여기서 ‘거리두다’란 말의 실례들이 다시 내게 다가왔다. 한 분은 1천만 도시의 막중한 시장 책무를 수행하다가 가해자가 되어 자진의 선택을 했고 다른 한 분은 친일의 오명과 구국의 업적이 부딪히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저마다의 평가가 있겠으나, 이분들의 장례 절차를 하루만이라도 넘기고 난 후 고소와 비판이 이루어졌다면 실정법적 역사적 판단과 평가가 좀 더 의연했겠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했다. 그즈음 나는 소설가 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고 있었는데 이 짧은 장편은 재북 시인 백석이 산골로 하방되는 후년 시절을 재현한 것이다. 개인숭배가 한껏 강요되기 시작하면서 상상력도 말라가고 언어의 생동감도 잃게 되면서 “현실의 벅찬 한 면만을 구호로 외치며 낯을 붉히는 사람들의 시 이전의 상식을 배격”하는 세태에 대한 백석의 탄식을 아프게 읽으면서 작가동맹 기관지에 실렸다는 “시는 깊어야 하며, 특이하여야 하며, 뜨거워야 하며 진실하여야 한다”란 그의 말을 따갑게 받아들였다. 한달 남짓 전에 작고한 그분들의 다른 한 면, 이 우악스러운 세상의 다른 한쪽을 잠깐이라도 거리를 두고 침착히 보았다면 일상과 시대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을 것이며 어떤 질문도 허용치 않는 죽음이란 삼엄한 사태에 마땅히 숙연해졌을 것이다. 그런 후에야 백석이 소망한 깊음, 특이함, 뜨거움의 진실이 감싸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정서적 정황이라면, 질의 의원에게 이른바 “소설 쓰시네”란 법무장관의 비웃는 듯한 비아냥은 분명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여당 대표 말 때문에 서울시민의 자부심을 “천박한” 자기모멸로 자학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권의 말은 어떠했는가. 시대에 대한 관용, 인간에 대한 이해, 사태에 대한 성찰이 앞섰더라면 우리 역사와 현실에 대한 사회적 예의도 정중하고 격조 높았을 것이다.
문학에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만든 ‘낯설게하기’란 용어가 있다. 그저 “날씨 좋은 날”이라고 쓰기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서정주처럼 섧게 에둘러 거리를 두는 말로 읊을 때 좋은 날의 기막힌 그리움이 더욱 생생하게 실감된다. 문학의 표현은 바로 그 직접적인 서술보다 이처럼 낯선 말로 다시 느끼고 상상하고 인식하게 만들 때 보다 풍요롭고 윤택해진다. 낯선 사람에게 “정거장이 어디 있죠?”라고 묻기보다 “정거장 가는 길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라고 덧말을 끼워 넣을 때 보다 정중한 예의가 된다는 걸 중학생 영어 시간에 배웠다. 사회적 교제든 문학의 수사법이든 우회적이고 은유적일 때 예의가 되고 예술이 된다. 나는 활자 시대의 문화와 디지털 시대의 문명으로 갈라 사용하는 버릇이 있는데, 르네상스 이후의 문자 문명 속에서 이루어진 인문주의와 그 바탕으로 이룬 삶의 형태를 문화로 읽고, 디지털 기기로 우리의 의식과 관계를 탈문자화하는 형태를 문명으로 보는 것이다. 0과 1로 자연과의 관계를 디지털화하고 그것으로 세계를 디자인하는 문명과, 사유로 더듬고 문자로 표현하는 성찰의 문화를 구별하는 것이다. 그것이 만드는 이미지는 시골 초가지붕과 뒷산의 부드러움이 다소곳한 정다운 모습과 현대도시 마천루의 삐죽한 돌출의 대조적 형상이며, 살포시 고개 들어 조용히 눈인사하는 숙려와 뻣뻣이 머리 치켜들고 세상 두려울 것 없다는 듯 휘젓는 오만의 어긋난 모습이다.
이 차이와 그 어긋남에서 인간세계의 어두운 미래상을 보는 듯하다. 그 불안이 코로나 ‘빛무리’에 싸인 문명의 자신감 뒤에 파탄이 숨어 있음을 예감시킬지도 모른다. 나는 미래의 문명과 운명을 향한 조심스러운 인사로써 그 파탄이 유예될 수 있기를, 그것이 거리두기의 성찰로써 종말에의 두려움을 겸손하고 부드럽게 수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연 세계와 인간관계에 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해온 녹색주의자 김종철의 유고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이 그래서 아프게 읽힌다. “어쨌든 근대적 언어밖에 모르는 (빈곤한) 정신력으로 인간사의 내적 진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창궐하는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닌 것 같다. 경박한 언술, 사이비 예언도 창궐하고 있다”는 진단, “‘지옥’으로 가는 길을 ‘진보’의 길로 믿는 것은 아닌가”란 비관적 전망이 그렇다. 나는 여기서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가 평정(平靜)의 문화적 삶으로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김병익 ㅣ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