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박찬수 특파원
아침햇발
미국에서 언론이 재선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던지는 물음의 하나는 이것이다. “앞으로 의회, 특히 여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의회와의 협력이 긴요한 건 어느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재선 대통령의 처지는 좀 다르다. 흔히 대통령은 증기기관차에 비유된다. 임기 초반에는 엄청난 힘을 내뿜으며 질주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증기의 힘은 약해지고 추진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4년 중임제인 미국에선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는 순간이 바로 증기의 압력이 서서히 빠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더는 선거에 신경쓸 필요가 없는 대통령과, 4년 뒤면 물러날 대통령을 바라보는 의원들의 이해는 엇갈리게 된다. 대통령은 자신의 업적에 더 신경쓰지만, 의원들은 곧 다가올 중간선거를 먼저 생각한다. 대통령과 여당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조지 부시 대통령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가 지난해 1월 취임식에서 집권 2기의 핵심 어젠다로 사회보장제 개혁을 내세웠을 때,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게 표가 되지 않으리란 계산 때문이다. 지난해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이후 부시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내몰린 데엔 공화당과의 긴장관계가 한몫을 했다. 연방대법관 후보로 부시가 자신의 측근인사를 지명하자, 공화당 의원들은 상원 인준을 보장할 수 없다고 위협했다. 결국 부시는 대법관 지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과 의회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는 건 정치환경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통계를 보면, 1887년부터 1952년까지 백악관 주인과 상·하원 다수당이 일치하지 않은 기간은 불과 8년이었다. 그러나 1952~2000년 사이의 4분의 3을 미국 대통령들은 야당 주도의 의회와 상대해야 했다. 1950년대 초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이후 모든 대통령들이 백악관에 의회업무 전담 비서실을 두고 있는 건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야당이 강력할 때 대통령은 야당과 여당 중 어느 쪽에 더 신경을 써야 할까? 미국에선 대통령이 여당뿐 아니라 야당 의원들과 언제든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정치환경이 다르다. 그래도 백악관으로선 이 부분이 항상 고민거리로 남아 있다.
대야 관계가 중요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여당과의 관계보다 앞서진 못한다고 전직 백악관 참모들은 입을 모은다. 요근래 재선 대통령 가운데 두번째 임기를 비교적 평온하게 보낸 이는 로널드 레이건이 유일하다. 백악관에서 여러 정권의 성쇠를 지켜봤던 데이비드 거겐은 저서 <권력의 증인>에서 “레이건은 아이젠하워 시대 이후로 아무도 하지 못했던 공화당의 결속을 일궈냈다”고 성공비결을 지적했다. 레이건은 의회와 대립할 때 때때로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을 썼지만 이것 역시 공화당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여소야대일수록 여당과의 관계는 더 중요해진다고 아버지 부시 시절의 백악관 참모 개리 앤드러스는 말한다.
부시 대통령은 오는 31일 새해 국정연설을 한다. 대외정책도 중요하지만, 국내 정치적으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의회와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지가 관심거리다. 민주당과의 ‘초당적 협력’은 물건너간 지 오래다. 지난달 하원 본회의장에선 이라크 철군 결의안을 둘러싸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거의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 미국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래서 관심은 부시가 공화당의 폭넓은 지지를 계속 받을 수 있을지에 더 쏠린다. 여당의 강력한 지지 없이 성공한 대통령은 미국 정치사에 아직 없기 때문이다.
박찬수/워싱턴 특파원 pcs@hani.co.kr
박찬수/워싱턴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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