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ㅣ 산업부장
말과 세계, 언어와 의식 이야기다. 시작은 최근 국내 몇몇 주요 기업들의 분주한 행보를 지켜보다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가면서부터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엘지(LG), 에스케이(SK) 등 4대 그룹의 총수들이 분주히 오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언론은 ‘케이(K)-배터리 동맹’ 운운하며 거창한 의미를 끌어다 댔다. 이들만이 아니다. 잘나가는 플랫폼 기업들은 내로라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과 흔쾌히 손을 맞잡았고, 대형 이동통신 기업들은 인공지능(AI)과 로봇 분야 선두주자와 힘을 합쳤다. 자고 나면 산업지도가 새로 그려지는 최첨단 세상. 아, 열심히 편을 먹는구나.
물론 기업들의 ‘한편 되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글로벌 항공사와 해운사들만 해도 오래전부터 극소수 항공동맹과 해운동맹의 충실한 구성원들이고, 새로운 기술과 산업이 등장할 때면 으레 표준 경쟁을 둘러싼 기업들의 세 불리기와 패싸움이 되풀이됐다. 인간 세상에서 ‘편먹기’는 개별자의 고단함과 두려움을 버리고 무리지음의 안온함과 안정감을 취하려는, 조금은 비겁한 생존전략이다. 정치권을 무시로 달구는 낯익은 편가르기 공방도 실상은 편먹기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옳다. 정당이란 단어의 본래적 의미가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 아니던가.
어찌하다 생각의 끈이 여기까지 마구 풀려버린 데는 지난 몇년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두 열쇳말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어서다. ‘대결’과 ‘경쟁’. 대결과 경쟁은 분명 다르며, 둘의 존재론적 거리두기야말로 한국 경제, 나아가 한국 사회에 던져진 과제라는 게 요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대결을 ‘양자(兩者)가 맞서서 우열이나 승패를 가림’으로, 경쟁을 ‘같은 목적에 대하여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룸’으로 풀이한다. 대결이 주체를 2차원 평면 속으로 욱여넣는다면, 경쟁의 속성은 다차원적이고 입체적이며 단일한 정체성의 틀에 가두지 않는다. 경쟁이 반드시 무리지음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 데 반해, 대결은 상대적으로 편먹기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
지난 몇십년간 한국 사회가 걸어온 궤적을 돌아보면 경쟁보다 대결에 방점이 찍힌 건 분명하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지난한 여정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산업화 시대 영웅들의 눈물겨운 무용담은 으레 상대가 있는 싸움,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승부였다. 부당한 공권력의 폭력에 힘 합쳐 맞서야 했던 민주화 운동 역시 내편 네편이 분명한 전투였다. 문제는 ‘결과적으로’ 산업화 시대에 생성되고 민주화 시대에 증폭 배양된 편먹기의 유전자가 마치 진한 문신과도 같이 여전히 한국 경제와 한국 사회에 깊이 새겨져 있다는 슬픈 현실이다. 대결엔 능하나(혹은 열성이나) 정작 경쟁엔 약한(혹은 소극적인) 한국 사회의 비밀 아닌 비밀의 뿌리.
2020년 세상에서 이른바 ‘잡는다’라는, 너무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정책 언어와 행위를 바라보는 속내가 유독 불편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올 들어 부동산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에 놀란 정부는 허둥지둥 집값을 잡는 데 올인한다. 채소값, 프랜차이즈 가맹비, 임대료….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높아질수록 서둘러 잡아야 할 목록도 꼬리를 문다. 혁신하고 개혁한다는 정권이건만, 앞선 정부들이 보인 행보의 판박이다. 시장주의자들이나 보수 언론처럼 정부가 감히(!) 시장에 맞서려 하느냐며 타박하려는 게 아니다. 무턱대고 경쟁을 찬양하려는 뜻도 아니다. 적어도 2020년 세상의 정책 언어와 행위는 승부와 대결의 낡은 틀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는 얘기다. 시장은 건곤일척의 대결과 승부를 펼쳐야 할 적수가 아니다. 대결은 결국 경제의 상처를 덧낼 뿐이다. 설령 무언가 잡힌다 한들.
1960~70년대. 지금도 한국 사회를 주도하는 세대의 ‘의식의 원형’이 처음 형성된 그 시절. 한국 사회의 일상을 지배한 언어는 단연 박멸과 척결이었다. 전투하듯 사람들은 열심히 때려잡았다. 쥐, 기생충 그리고 빨갱이를. 2020년이다. 빠르게 내달리는 경쟁의 시간을 낡아빠진 대결의 기억에서 허우적대는 건 차라리 희극이다. 오늘도 우리는 잡느라 애쓴다. 잡아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잡지 못한다며 탓한다. 대결의 기억은 경쟁의 시간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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