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에서나 어깨 우쭐할 것이지 어디서 가르치려 드냐”라는 말. 이 말은 ‘케이(K)-인종주의’의 본질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는 2017년 방영된 제이티비시 <말하는 대로>에 출연해 한국에서 경험한 인종차별 사례를 들려줬다. 사진 제이티비시 화면 갈무리
공적 지면에 실린 글 중 질색하는 형식이 세 가지 있다. (공자, 플라톤 혹은 어떤 현자와의) ‘가상대화’, (‘몇 년 후 대한민국’류) ‘예언’, (주로 서울대 출신 아재가 동문에게 보내는) ‘편지’다. 잘 쓴 글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에 샘 오취리씨에게 편지를 쓰다가 결국 지웠다. 그에게 건네야 할 말이 그저 한마디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취리씨, 당신이 사과할 일이 결코 아닙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오취리씨가 아니라 잘못된 한국 사회를 향해야 한다.
의정부고 학생들이 저지른 짓, 그러니까 웃겨보겠답시고 얼굴을 까맣게 분장한 그 짓은 명백한 인종차별 행위다. 코미디언 장두석·이봉원씨의 1980년대 코미디 ‘시커먼스’는 인종차별이었고 코미디언 홍현희씨의 2017년 흑인 분장도 인종차별이었다. 그 짓은 30년 전에도 인종차별이었고 지금도 인종차별이며 미래에도 인종차별일 것이다. 이건 몇 안 되는 인류적 합의에 속한다. 즉, 당신이 납득하건 말건 인종차별이다. 오취리씨의 과거 인종차별 의혹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었다. 의정부고 학생들이 오취리씨의 과거 행동을 특정해 ‘미러링’한 게 아닌 이상, 논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별개 사안이다. 피해자의 전력이 가해를 정당화할 순 없다.
인종차별에 세트메뉴처럼 따라붙는 옹호 논리가 있다. “비하하려는 의도가 결코 아니었다.” 아마 사실일 테지만 의도가 없더라도 인종차별임은 변함없다. “딸 같아서 만졌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아저씨의 터치가 성폭력인 것처럼, 의도 없이도 얼마든지 폭력은 성립한다. 이를 의도와 ‘무관’한 잘못이라 오해하면 곤란하다. 엄밀히 말하면, 인종차별 역시 ‘의도’에 따라 구분된다. 의도가 없어도 인종차별이고, 의도까지 있다면 더 질이 나쁜 것이다. 법에서도 ‘고의’와 ‘과실’을 구별한다. 고의로 저지른 악행은 당연히 범죄다. 그러나 과실에 의한 악행이라고 해서 곧장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고의 범죄보다 형량이 좀 깎일 뿐이다. 게다가 과실이 반복되면 그건 더 이상 과실로 인정받지 못한다. ‘시커먼스’의 시대였다면 ‘정상참작’의 여지라도 있겠지만 지금은 2020년이다. 한국인은 같은 잘못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이건 더 이상 ‘실수’ 따위가 아니다. 노인부터 청소년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공유하는 국민적 습속이다.
가장 악질적인 인종차별은 오취리씨의 지적에 맞서 의정부고 학생들을 옹호하고 나선 이들에 의해 쏟아져 나왔다. 오취리씨 개인, 그리고 흑인을 향한 적나라한 혐오표현들은 차마 적지 못하겠다. 다만 어느 시민의 발언 하나를 기록해 두기로 한다. (소셜미디어에서 엄청나게 많은 ‘좋아요’를 받은 글이다.) “다른 나라 가면 공장에서 돈이나 벌랑가 모르지만 한국에서 좀 뜨게 해주니까 자기 본분도 모르고 관심받는다고 우쭐해져서 어디서 선생질을 하려고 들어. 가나에서나 어깨 우쭐할 것이지 어디 한국에서 가르치려고 들어.”
그렇다. 이건 단지 흑인차별이나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것은 오래전 박노자씨가 개념화한, ‘지엔피(GNP) 인종주의’다. 최근 ‘지디피(GDP) 인종주의’라고도 바꿔 부르는 이 인종주의는, 소위 ‘선진국’ 출신이냐 ‘후진국’ 출신이냐에 따라 철저하게 위계서열을 만들어 외국인을 다르게 대하는 한국인 특유의 행태를 가리킨다. 선진국 출신 백인을 떠받들고 심지어 특혜까지 주면서, 후진국 출신이나 유색인종을 깔보고 차별하는 경향이 특히 한국에서 유독 강했다. ‘좌파’이자 이방인이던 박노자에게 한국 특유의 인종주의는 새로운 어휘를 발명해야 할 정도로 기괴했던 것이다. “가나에서나 어깨 우쭐할 것이지 어디서 가르치려 드냐”라는 말. 이 말은 ‘케이(K)-인종주의’의 본질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글을 쓰는 도중에 뉴스가 떴다. 공주고 학생들이 흑인 분장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고 샘 오취리 이름까지 태그했다고 한다. 경악스럽다. 하지만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의정부고와 공주고의 이 어린 인종차별주의자들을 그냥 내버려둬선 안 된다.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게 하고 사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세계에 일조한 기성세대 또한 같이 반성해야 한다. 나는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우리가 적어도 지금보다 한 뼘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박권일 ㅣ 사회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