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별을 방문하는 게 아니라 별들 ‘사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지구 밖을 떠나지 않아도, 창밖으로 쏟아지는 장맛비를 보며 노래를 흥얼흥얼, 어깨를 들썩거리고만 있어도 우리는 늘 별들 사이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중이다.
심채경ㅣ천문학자
출판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마음에 품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고백 대신 “달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는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가 친절한 복선으로 등장할 때 내겐 두가지 궁금증이 인다. 하나는 그런 일화를 처음 들어본 나는 교양이 부족한 것일까 하는 것이다. 출판사에서 일할 정도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특별한 속닥거림을 그려낸 것이겠지 하고 합리화한다. 물론 두번째 궁금증은 시청자는 다 아는 주인공의 마음을 상대방은 왜 그리 몰라주냐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차피 드라마의 후반부에서 연인이 될 게 뻔한데 나는 뭘 그리 마음 졸이며 보느냐 말이다.
달을 노래하며 ‘다시 말해’ 사랑을 고백하는 아주 유명한 노래가 있다. 1950년대에 등장한 이래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는 팝송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이다. 어차피 곡의 후반부에서 “다시 말하자면, 사랑해요”라고 고백하겠지만, 노래는 “나를 달로 보내줘요”라는 말로 시작한다. 달의 무엇이 그토록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만드는지는 어떤 천문학자도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으리라. 노래를 듣다 보면 달콤한 사랑 고백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기도 하고, 만화에서처럼 자유롭게 하늘로 우주로 날아다니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한다.
달로 날아가며 시작한 노래는 “별들 사이에서 놀게 해줘요. 목성과 화성의 봄은 어떤지 보게 해줘요” 하는 대목으로 이어진다. 설레는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 어떤 계절인들 아름답지 않겠냐만, 화성의 봄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화성에도 봄이 있기는 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탓에 계절이 생기는 것인데 화성의 자전축도 지구와 거의 비슷한 정도로 기울어져 있어서다. 지구의 봄에는 사랑처럼 꽃이 피어나지만, 화성의 봄엔 필 꽃도 없고 동면에서 깨어날 개구리도 없다. 봄비도 장맛비도 내리지 않고 이따금 먼지 폭풍이 일 뿐이다.
심지어 목성에는 봄이 없다. 그곳은 계절이 없고 그저 일년 내내 대동소이한 풍경이다. 하늘을 잔뜩 메운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고 여기저기 강력한 소용돌이가 친다.
지구처럼 아름다운 계절 변화는 토성에서 만날 수 있다. 화성처럼 자전축 기울기가 지구와 비슷한데, 대기 속 물질이 햇빛에 반응해 계절마다 하늘빛이 달라진다. 겨울에는 약간 푸르스름한 빛을, 여름에는 약간 노르스름한 빛이다. 토성의 고리가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는 하지와 동지에 넓어졌다가 춘분과 추분에 좁아진다. 고리 속 수많은 얼음 조각이 햇빛을 받아 제각각 반짝이는 풍경도 계절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서 토성을 바라보는 것은 또 어떨까.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달이 너무 예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사실 달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걸 알 것이다. 그런데 타이탄에서 바라보는 토성은 달보다 열한 배 더 크다. 고리까지 하면 스물여섯 배나 된다. 그러니 타이탄에서라면 스마트폰 사진 속에서도 토성이 큼직하게 나올 것이다. 메테인이 잔뜩 들어 있는 유독가스 속에서 당신과 스마트폰 둘 다 살아남는다면 말이다.
지구 밖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다른 행성에 가서 그곳의 봄을 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곳의 풍경은 기대에 못 미칠지 모른다. 바로 앞의 달까지 가는 것만 해도, 미국이 50여년 만에 다시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낸다는 계획에 세계가 크게 주목하는 대사건이다.
그래도 ‘플라이 미 투 더 문’의 노랫말 중에 실현 가능한 것이 있다. 별들 사이에서 뛰어놀고,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이다. 화성, 목성까지 가 봐야 어차피 태양이라는 별 근처다. 태양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는 빛의 속도로 4년 정도 거리다. 1977년에 지구를 출발해 아직까지 항해 중인 탐사선 보이저호가 지금까지 간 거리가 빛의 속도로는 대략 21시간 거리임을 생각하면, 4광년은 정말 아득한 숫자다. 그러나 다른 별을 방문하는 게 아니라 별들 ‘사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지구 밖을 떠나지 않아도, 창밖으로 쏟아지는 장맛비를 보며 노래를 흥얼흥얼, 어깨를 들썩거리고만 있어도 우리는 늘 별들 사이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