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27일 대한민국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소속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제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과 연결된 계단으로 진입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2000년 6월27일 대한민국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에 소속된 베트남 참전군인 2천여명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건물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 병력과 대치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베테랑들이다.
노트북에서 폴더 하나를 열어 사진을 감상한다. 용맹한 노장들의 어떤 작전 모습이다. 거침없다. 온몸을 던진다. 기어코 저지선을 돌파하는 광경에 탄성이 나온다. 나에게 삼촌뻘인 그들.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베테랑에게 정이 들었을까. 그래서 굳이 옛 필름을 찾아냈는지도 모른다. “이상하네. 그날치 필름 원본만 쏙 빠져 있어.” 사건 현장을 촬영한 사진기자 선배에게 어느날 그 말을 들었다. 묘한 상실감이 밀려왔다. 없을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료실 서가 한쪽에 놓인 옛 필름철을 직접 뒤졌다. 2000년 6월27일, 그날 필름만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또 뒤졌다. 결국 별도 필름철에 정리된 컬러 네거티브(원판) 필름 현상분 13장을 발견했다. 스캔을 받으니 사진은 300장이 넘었다.
20년 전 여름, 베테랑들이 한겨레를 방문했다. ‘대한민국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깃발 아래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00여명의 베트남전 참전군인. <한겨레21>과 <한겨레>의 베트남전 연속 보도가 자신들을 학살자로 매도했다며 분노하고 흥분했다. 그들이 보인 퍼포먼스는 공포 특급이었다. 흡사 작전 같았다. 16개 중대 2240명의 전투경찰 방어선은 쉽게 뚫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겨레신문사라는 목표물을 타격해 초토화시켰다. 사진 속에선 뒤집힌 승용차, 무너진 담벼락, 짱돌을 던져 깨뜨린 유리창, 불에 그을린 흔적이 어지러웠다.
정말이지 정이 들어버렸을까. 이 글을 쓰며 베테랑과 함께한 20년을 돌아본다. 또 다른 베테랑에 관해 생각해본다.
베테랑들은 당시 50대 초중반이었다. 나를 포함해 관련 보도를 했던 기자들은 30대 초반이었다. 전화로 울분을 토하던 한 베테랑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목숨 걸고 전투할 때 기저귀 차고 있던 놈들이….” 정확한 지적이었다. 베트남전쟁이 최고조이던 1968년, 나는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걸음마를 배우던 아기였다. 그러나, 인간은 배우고 탐구하며 성장한다. 또는 성장을 멈추기도 한다. 그들은 전쟁 중 잔혹 행위를 당한 민간인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했다. “베트콩과 양민의 식별이 불가능했다”는 베트남전쟁의 특성을 논리 삼아 자기변호만 했다.
50대 베테랑들은 70대가 되었다. 30대 기자들은 50대가 되었다. 아직도 군복을 입고 단체행동을 하는 70대 베테랑들의 모습이 아쉽기는 해도, 이를 꼬집는 일은 신선하지 않다. 2020년에도 전화를 걸어 이미 결론이 난 논쟁을 되풀이하려는 이들이 있지만 짠할 뿐이다.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20년 전 그들을 비판하던 나다. 아니, 나의 세대다.
베테랑은 ‘참전용사’라는 뜻과 함께 노련한 경력자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86세대라 불리는 지금의 50대 역시 베테랑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총을 들지 않았지만 80년대 거리에서 권위주의 질서를 붕괴시키는 ‘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전과’를 얻고 ‘훈장’을 탔다. 그리고 이제 기득권 중앙에 진입했다. 이 새로운 베테랑들은 존경받고 있는가.
전쟁 장면을 재현한 듯한 20년 전 여름 그날의 사건은 전환기적이었다. 베트남전 참전에 관해 “안보와 경제에 기여했다”는 유일한 기억만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두개의 기억이 처음으로 격렬하게 충돌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조사한 피해자의 불편한 기억과 증언에 베테랑들은 당황했고 파괴적 행동으로 반응했다.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부질없었다. 20년이 지난 2020년 여름의 상황도 전환기적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이 부른 초유의 미투 국면에서 50대 뉴 베테랑들은 흔들린다. 물리적 난동을 피우지는 않지만, 쏟아내는 말 중 일부가 난동 취급을 당한다. 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비판에 당황한다. 진심이 매도당한다고 여긴다. 그게 아니라고 설명할수록 늪에 빠진다. 전쟁 경험을 맹신해선 안 되듯, 투쟁 경험을 과신하며 도덕적 절대우위에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20년 전 그날의 화두가 전쟁이었다면, 지금은 젠더다. 아, 쓰고 보니 모독적인 비교다.
2040년, 70대가 된 ‘민주화 베테랑’은 어떤 모습일까. 설명하지 말고 공부할 때다. 나부터, 닥치고 공부해야겠다.
고경태|오피니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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