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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용산공원이 온다 / 배정한

등록 2020-07-24 17:13수정 2020-07-25 02:04

용산공원 조성계획안 조감도. 국토교통부 제공
용산공원 조성계획안 조감도. 국토교통부 제공

배정한 l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질곡의 역사가 두껍게 쌓인 금단의 땅, 용산 미군기지의 빗장이 풀렸다. 지난 21일, 서빙고역 건너편 용산기지 동남쪽의 미군 장교숙소 5단지(약 5만㎡)를 개방하는 행사가 열렸다. 한·미 두 나라가 기지 이전에 합의한 지 30년, 정부가 국가 주도의 공원화를 발표한 지 15년 만이다. 막막하기만 하던 용산공원 조성의 긴 과정이 이제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셈이다. 8월1일부터는 개방된 부지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116년간 지도에서 삭제된 장소를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고 여유로운 소풍을 즐길 수도 있다.

소박한 잔디 광장에 발 뻗고 앉아 개방 행사와 공연을 보니, 미지의 영토가 드디어 우리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실감이 절로 났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2006년의 어느 여름날이 떠올랐다. “서울 한복판에 새로 열릴 80만평의 녹지공원은 생각만 해도 가슴을 부풀게 만듭니다. 시민 누구나 차표 한장 들고 부담 없이 찾아와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민의 마당이 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2006년 8월24일) 축사, 다시 읽어도 언제나 가슴이 뛴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의 이전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면서 용산기지 반환과 공원 조성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기지 이전이 완료된 뒤에도 한·미 행정협정(SOFA)에 따라 장기간의 반환 절차를 거치게 된다. 토양 오염 조사와 정화, 시설 조사와 실측, 문화재 조사가 끝나야 공원 조성을 시작할 수 있다. 빨라도 2030년대 초반에나 공원의 1단계 구역이 개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만큼 용산공원은 다음 세대의 공간이고 미래 세대의 자산이다. 앞으로 남은 10년 이상의 시간은 무력한 공백기가 아니라 충실한 준비를 위한 소중한 과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부분 개방은 의미를 지닌다. 기지 이전이 끝나기 전에, 공원 조성이 시작되기 전에, 미지의 땅을 미리 경험하며 공원의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계획 과정에 시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밑판이 마련된 셈이다. 담을 허물고 문을 열었다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이 부지가 용산공원을 함께 그리고 만드는 실험실로 운영되기를 기대한다. 우선 2018년에 완성된 기본설계안을 두고 시민들과 토론하는 참여의 플랫폼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부지의 역사와 이야기를 모으는 저장소로, 젊은 예술가들의 문화 발전소로, 공원 조성의 과정을 디자인하는 ‘리빙랩’으로, 미래 세대의 신나는 공원 학교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개방 못지않게 반가운 또 하나의 성과는 공원의 경계가 확장됐다는 점이다. 부지에 맞붙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전쟁기념관이 용산공원으로 편입됐고, 공원 북쪽의 군인아파트와 경찰청 시설 예정지도 공원 구역에 추가되어 남산 쪽 연결성이 개선됐다. 옛 방위사업청 부지도 곧 편입될 계획이다. 약 50만㎡가 넓어져 이제 용산공원의 면적은 299만6천㎡(90만6천평)이다. 공원 한가운데 섬처럼 남게 될 미군의 드래곤힐 호텔과 방호 부지가 큰 골칫덩이지만, 정부의 지혜로운 협상 능력을 기대해본다.

감염병과 기후 변화에 움츠러든 위기의 도시 한복판에 축구장 400개 크기의 공터가 생긴다는 것, 여의도만한 면적의 대형 공원을 가지게 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2006년 선포식 때 심은 희망의 나무에는 ‘용산공원, 2045년’이 새겨져 있다. 소통과 참여의 과정 중심의 계획을 통해 용산공원의 여백을 채워갈 긴 여정은 우리 사회와 도시 문화의 성숙을 증명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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