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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심채경, 랑데부] 막 시작된 우주적 랑데부

등록 2020-07-09 18:44수정 2020-07-10 15:51

서로 다른 두 궤도의 절묘한 발맞춤을 가능케 하는 과학 기술의 발현, 인류의 관심을 지구 밖으로 넓혀나가겠다는 의지, 우주와의 랑데부는 그 모든 것을 내포하는 교향곡이다. 별생각 없이 신문 기사를 훑어보다 이 글을 만난 당신에게도 우주적 랑데부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심채경 ㅣ 천문학자

비투비 임현식의 노래 중에 ‘랑데부’(Rendez-vous)라는 곡이 있다. 그대의 중력이 나를 끌어당겨 거리를 두고 서서히 따라가다 마침내 긴 여정의 끝에 서로 맞닿는다는 내용이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낭만적인 노래가 내게는 우주를 꿈꾸는 노래처럼 들린다.

우주를 떠다니는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이 돌덩이의 정체가 너무도 궁금해 우주선을 하나 보내 자세히 관찰하고자 한다면, 사진기를 매단 부메랑을 던지듯 우주선을 쏘아 보내 돌덩이 주위를 스쳐 지나가며 한차례 관찰할 수도 있지만, 주머니 사정이 조금 더 넉넉하다면 우주선이 한동안 이 돌덩이를 따라가면서 편대비행 하게 할 수도 있다. 숨 막히는 어둠 속을 고요히 떠돌고 있는 커다란 돌덩이 곁에 라디오를 들고 있는 작은 우주선 친구를 붙여주는 것이다. 라디오는 지구의 신호를 우주선에 전달하고, 우주선이 이 돌덩이에 대해 알아낸 것들을 다시 지구로 송신할 것이다. 같은 방향과 같은 속도로, 소행성의 궤도에 정확히 발맞추는 ‘랑데부’다.

우주 랑데부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고민했던 사람은 아마도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방문했던 버즈 올드린일 것이다. 그는 달로 향하는 우주선에 탑승하기 수년 전부터 우주에서 서로 다른 두 물체가 랑데부하는 기법을 연구했다. 지상에서라면 속력을 높이거나 늦추는 방식으로 다른 물체를 따라잡을 수 있지만, 우주에서는 속력을 바꾸면 궤도의 높낮이도 같이 변하기 때문에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달에 착륙했다가 다시 돌아오려면, 달 상공을 맴돌며 기다리던 사령선과 다시 만나야만 한다. 달 표면에서 이륙한 뒤에 사령선과의 랑데부에 실패한다면 영영 지구로 돌아올 수 없다. 버즈 올드린의 랑데부 연구는 인류 최초의 유인 달 탐사에 크게 기여했고, 이후의 우주 탐사 임무를 설계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사람들은 그를 ‘랑데부 박사’라고 부른다.

한달여 전,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회사 스페이스엑스가 민간으로서는 최초로 유인우주선을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냈다. 크루 드래건 캡슐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우주선은 지표면으로부터 400㎞ 높이의 상공으로 올라가 시속 2만7천㎞의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접근했다. 가까워질수록 점차 서로의 궤도를 맞추며 함께 지구 둘레를 날았다. 성공적인 랑데부는 성공적인 도킹으로 이어졌고, 크루 드래건이 우주정거장에 연결된 뒤, 19시간 전 지구를 출발한 우주비행사들은 마침내 해치를 열고 우주정거장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정부 기관이 아닌 민간에서의 우주 탐사 시대를 여는 순간이었다. 서로 다른 두 궤도의 절묘한 발맞춤을 가능케 하는 과학 기술의 발현, 인류의 관심을 지구 밖으로 넓혀나가겠다는 의지, 우주와의 랑데부는 그 모든 것을 내포하는 교향곡이다.

처음부터 정교하게 계산된 것 말고 다소 우연한 랑데부도 있다. 2006년 지구를 떠난 뉴호라이즌스 탐사선은 9년여의 항해 끝에 명왕성을 만났다. 애초 계획했던 탐사를 모두 마친 뒤 뉴호라이즌스호는 제 숙명을 따라 우주 속으로 더 멀리 날아갔는데, 아직 탐사선의 컨디션이 좋았기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은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 더 만나볼 만한 천체가 있는지 면밀히 검토한 끝에 지구에서 65억㎞나 떨어진 곳에서 아령처럼 생긴 소행성 ‘아로코트’와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우주 탐사에서 쓰이는 엄밀한 의미의, 궤도를 맞추는 랑데부라기보다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었는데, 태양계 탄생 초기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이 소행성의 신비로운 사진은 지구상의 누군가에게는 우주의 모든 중력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강력한 힘에 이끌려 우주를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내게 있어 우주와의 랑데부는 완전한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서점에 갔다가 다양한 성운과 은하 사진으로 가득한 과학잡지를 무심결에 집어 들었는데, 그것이 랑데부의 시작이었는 줄도 모르고 그저 우주 사진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천문학의 세계에 도킹해 있었다. 친구의 오디션에 따라갔다가 캐스팅된 배우나 세찬 장맛비에 우산을 빌려주었다가 연인으로 발전한 커플에게도 그런 환상적인 랑데부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신문 기사를 훑어보다 이 글을 만난 당신에게도 우주적 랑데부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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