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하이코 마스 독일 법무부 장관은 하랄트 랑게 검찰총장을 해임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재가를 얻은 조처였다. 독일 제도는 우리와 달라 정무직인 검찰총장을 언제든 해임할 수 있는 구조지만 실제로 임기 중 해임된 것은 이례적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한 인터넷 매체에 대한 반역 혐의 수사였다. 독일 검찰은 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이 국내 온라인 감시를 강화하려 한다는 폭로 기사를 문제삼았다. 기밀문서를 바탕으로 보도했기 때문에 반역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나섰다. 언론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이 정치권, 언론, 국제사회로부터 쇄도했고, 법무부 장관은 수사 중단을 지시했다. 랑게 총장은 “용인할 수 없는 독립성 침해”라는 성명을 내며 저항했다. 그 직후 마스 장관은 총장 해임을 단행했다.
이 사건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승리로 평가받는다. 랑게 총장은 검찰 독립의 수호자가 아니라 검찰권 남용의 상징으로 각인됐다.(<검사와 민주주의>, 옥스퍼드대 출판부) 특정 사건에 대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비판적이었던 독일 언론도 랑게 총장 해임을 반겼다. <슈피겔>은 “해고만 부른 검사의 반란”이라고 비평했다. 랑게 총장은 앞서 미국 국가안보국이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를 도청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해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두고 외국에는 유사 사례가 거의 없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이렇게 ‘격한’ 사례도 있다. 검찰이 자의적으로 편향된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에서는 수사지휘권이 ‘선출된 권력에 의한 민주적 통제’로서 정당하고도 필요한 조처임을 보여준다. 문제가 된 랑게 총장의 행위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잉 수사’가 아니라 ‘총장 측근 수사 방해’였다면 독일 법무부 장관의 대응은 어땠을까.
유엔과 국제검사협회 등 국제기구는 검찰의 독립성과 관련해 “검사는 특히 공직자의 부패, 권한 남용, 심각한 인권 침해 사건은 ‘어떤 경우에도’ 방해받지 않고 기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검찰 독립성의 핵심은 힘 있는 자가 그 힘을 부당하게 이용하고도 정치적 보호막 뒤에 숨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수사지휘권이 장관의 측근이나 여권 인사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검찰의 독립성 침해로서 부당한 것이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인 한동훈 검사장 관련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라는 수사지휘는 검찰의 독립성과 무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측근 감싸기’ 의심을 받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 검사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검찰은 독립성을 말하기 전에 검사 비위를 우리처럼 감싸는 검찰이 세계 어디에 또 있으며 검찰 수장의 측근 감싸기로 논란을 빚은 사례가 어디에 또 있는지부터 돌아볼 일이다.
검찰의 독립성은 여당 정치인이든 정부 관료든 고위 검사든 사회적 약자든 평범한 시민이든 모두 똑같이 대할 때 비로소 빛이 나는 원칙이다. 미국 법무부 장관(검찰총장)을 지내고 대법관이 된 로버트 잭슨도 이 점을 강조했다. “검사는 본래 역할을 다할 때 사회에 최선의 기여를 하는 권력이지만, 악의나 비열한 동기로 행동할 때는 최악의 권력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검사는 사회의 어떤 집단에 대해서도 최대한 사심 없고 공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