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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윤석열’이 낯설다 / 이춘재

등록 2020-07-06 17:58수정 2020-07-07 02:39

이춘재 ㅣ <한겨레> 사회부장

“정무감각이 없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난해 국감 발언이 지금은 영 낯설다. 그는 현재 역대 어느 ‘정치검사’보다 뛰어난 정무감각을 자랑한다. 자신의 최측근을 무리하게 감싸려다 자초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권력의 부당한 외압’으로 절묘하게 몰아가고 있다.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의 피의자가 되자 스스로 “수사지휘에서 손을 떼겠다”고 했던 그다. 그런데 그 말을 지키라는 장관의 지시는 못 따르겠다고 몽니를 부린다.

지난 3일 전국 검사장 회의 소집은 그의 물오른 정무감각을 잘 보여준다. 이 회의에는 이번 수사를 지휘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검사장을 뺀 전국의 모든 고검장, 검사장 25명이 참석했다. 이들 가운데는 지난해 윤 총장 취임 직후 단행된 인사 때 검찰 요직에 임명됐다가 올해 초 추 장관이 주도한 인사에서 좌천된 ‘윤석열 사단’이 있다. 한 검사장과 한배를 탔던 이들이다. 이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추 장관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추 장관의 이름만 들어도 혈압이 오를 동료들 앞에서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해야 한다’는 말을 할 만큼 눈치 없는 검사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수사팀의 입장을 대변할 이성윤 검사장은 대검의 요청에 따라 참석하지도 못했다.

검사동일체 원칙이 강조되는 검찰은 ‘집단사고’(Groupthink)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대표적 집단이다. 검찰처럼 강한 응집력을 보이는 집단은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릴 때 만장일치에 도달하려는 분위기가 강해서 다른 대안들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이날 회의에서도 한 지검장이 윤 총장의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결정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말했다가 곧바로 강경론에 의해 제압됐다고 한다. 검사장들은 결국 ‘장관의 수사지휘 재고 요청’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옛 참모들이 모인 회의에서 이런 결론이 내려지리라는 것을 윤 총장은 예상하지 못했을까.

윤 총장은 검사장 회의를 통해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 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강경파들의 발언이 다음날 보수언론에 시시콜콜 보도되면서 보수진영을 자극하는 효과도 거뒀다. 마치 노회한 정치인들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장외투쟁으로 지지층의 세를 결집한 뒤 반격을 꾀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윤 총장은 오로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을 검찰 전체의 문제로 비화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사장 회의 결론은, 검찰을 선출된 권력의 민주적 통제를 거부하는 무소불위의 집단으로 보이게 할 우려가 있다.

검찰은 이미 15년 전에 이를 경험했다. 2005년 10월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휘했을 때 당시 검찰 주요 보직을 장악한 강경파들은 수뇌부에 수용 거부를 요구했다. 수사지휘권은 장관의 합법적 권한이고, 강 교수가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그랬다(실제로 강 교수에게는 1, 2심 모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그들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정권이 임명한 장관의 지시를 따르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전까지 검찰은 검찰 출신 장관들의 ‘음성적 지휘’는 고분고분 잘 따랐다. 강경파들은 수사지휘권 거부가 위법 논란을 일으킬 수 있음을 깨닫고는 총장에게 장관 지시를 수용하되 그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사퇴할 것을 건의했다. 그 결과 김종빈 총장은 취임 6개월 만에 옷을 벗어야 했다. 검찰은 참여정부에 ‘한방 제대로 먹였다’며 통쾌해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검찰은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정치검찰’로 원위치함으로써 수사지휘권 파동 때 내세운 ‘정치적 독립’이 빈말이었음을 보여줬다. 검찰이 지난 촛불정국에서 ‘적폐청산’ 1순위가 된 배경이다.

윤 총장은 추 장관의 지시를 자신을 몰아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것 같다. 최근 여권에서 윤 총장을 성토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을 보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무감각이라곤 전혀 없는 ‘윤석열 스타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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