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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질병관리청의 전국구화, 그게 답일까 / 이순혁

등록 2020-06-21 15:59수정 2020-06-22 09:17

이순혁 ㅣ 전국부장

최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국민적 스타로 떠오른 정은경 본부장이 이끄는 질병관리본부의 격상 자체를 두고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지만, 질병관리본부 아래에 있던 국립보건연구원을 복지부 아래로 옮기는 안을 두고 반대 여론이 크게 일었다. 질병관리본부를 독립적인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진 차관급 외청으로 띄워주는 척하며, 실속은 복지부가 챙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에 이어 정부·여당은 보건연구원을 질병관리청 산하에 그대로 두는 방안을 확정했다.

국립보건연구원만큼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정부안에는 질병관리청 산하 권역별 질병대응센터 신설이 포함돼 있다. “지역사회의 방역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서라는데, 보건의료인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자칫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코로나19 대응은 중앙의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본부와 광역자치단체 산하 보건환경연구원·보건소의 유기적인 협력 속에 이뤄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전체적인 지침과 기준, 진단법 등을 제시하면, 그에 따라 시·도 보건환경연구원과 보건소(와 위탁 민간병원)에서 검사 등이 이뤄진다. 상황은 실시간으로 질병관리본부에 보고되고, 질병관리본부는 매일 두차례 브리핑을 통해 국민과 상황을 공유한다. 메르스 때 교훈이 있어서인지, 질병관리본부와 현장 사이에는 수시로 화상회의가 열리는 등 소통도 원활하다고 한다. 민주적이면서도 효율적이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다는 케이(K) 방역의 바탕에는 이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업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신설되는 질병관리청 산하 지역센터들이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는 미정이다. 하지만 비슷한 전례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에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장관급인 식품의약품안전처로 격상하면서 권역별로 지방청도 확대·강화됐다. 문제는 식품·의약품 관리와 검사가 지방자치단체 업무에 가깝다는 점이다. 결국 일선에 혼란이 왔고, 현재는 수입식품은 지방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국내산 식품은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이 맡는 식으로 정리가 됐다. 수입식품도 수입 단계는 지방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유통 단계는 보건환경연구원이 맡는단다. 유통도 인터넷과 오프라인으로 나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관리한다. 이런 비효율을 만드느니, 지방정부의 인력과 예산을 늘려주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전국 단위 기획검사 역량 등을 확충했더라면 어땠을까.

마찬가지 우려가 질병관리본부의 권역별 질병대응센터를 두고서도 나온다.

우선 기본 원칙에 맞지 않는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감염병은 재난의 한 종류다. 그리고 재난 대처를 포함한 주민 안전, 건강 등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업무다. 지역 특성에 맞게 도시계획과 재난행정을 펼쳐나가는 지방정부가 지역에서는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여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코로나19 같은 국가적 재난에서는 전체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가 그런 업무를 잘 수행해왔다.

재난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겠느냐는 문제도 있다. 제아무리 시급한 상황에서도 규정과 권한을 따지고, 인사권자 눈치를 보는 게 공무원들의 습성이다. 식품·의약품 관리처럼 어정쩡하게 관할을 나눈다면, 신속한 대응은커녕 협조 요청과 검토만 하다가 날을 지새울 가능성이 크다. 제대로 된 재난 대응을 위해서는 지방 행정력과의 결합이 필수인데, 책임과 권한이 분산되면 이 또한 약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기울여온 방역 역량 강화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메르스 등을 거치며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에는 감염병연구부 등 전담부서가 생겼고, 보건소 인력이 확충됐으며, 광역자치단체에 역학조사관 자리가 생겼다. 지방정부를 통한 현장 대응 역량 강화가 꾸준히 이뤄져왔고, 중앙은 컨트롤타워로서 전문성을 강화해온 셈이다.

현재 잘 굴러가는 중앙-지방 협업 모델을 두고 왜 갑자기 중앙정부 조직을 지방마다 두겠다고 나섰을까. 뭔가 계획이 있겠지만, 그 계획이 공무원 자리 늘리기라는 꼼수는 아니길 빈다.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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