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길들이기 위해 소의 코청을 꿰뚫어 끼는 나무 고리를 코뚜레라고 한다. 인서울 대학은 그런 코뚜레 역할을 기가 막히게 잘해내고 있다. 지방 스스로 지방을 죽이게끔 만드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코뚜레는 국민의 평등권을 유린하는 지리적 약탈체제의 수호신이다. 사기극으로 전락한 국가균형발전, 차라리 이걸 쓰레기통에 내던지는 게 집단적 위선과 기만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선 국민의 정신 건강에 훨씬 더 좋은 게 아닐까?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단비뉴스의 활약이 정말 대단하다.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소속 언론사인 단비뉴스는 기성 언론이 소홀히 다루는 분야나 이슈를 심층 취재해 보도하는 등 자주 감탄을 자아낸다. 최근 보도한 ‘승자독식’ 교육재정의 문제는 교육문제를 넘어서 대한민국이 작동하는 기본 방식의 위선과 기만을 우회적으로 폭로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기사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국 대학에 지원한 재정지원사업비 총 49조6749억원 가운데 서울대에 지원된 금액은 4조6175억원으로 전체의 9.3%를 차지했다. 또 연세대에 지원된 금액은 2조4479억원으로 전체의 4.9%, 고려대는 1조8258억원으로 전체의 3.7%를 차지했다. 세 대학의 재정지원사업비 총합은 8조8912억원으로 전체의 17.9%에 달했다. 매해 대학별 평균 재정지원비 기준으로 살펴보면, 서울대는 평균 3848억원, 연세대는 2040억원, 고려대는 1522억원의 사업비를 각각 지원받았다. 서울대는 전국 대학 평균의 20배 가까이, 연세대·고려대는 7~10배를 지원받은 셈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 중엔 ‘그게 뭐가 문제야?’라고 생각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교육만큼은 평등주의보다는 탁월성 기준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지원 방식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소득과 재산 수준에서 상위 20% 계층의 자녀들이 명문대에 많이 간다는 게 상식이 된 세상에서, 나머지 80%가 낸 세금까지 그 대학들에 집중 지원해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킨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국익이냐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는 좀 더 따져볼 문제겠지만, 이 글의 논점은 아니다. ‘국가균형발전’은 과연 우리의 주요한 국가적 목표인가, 아니면 적당히 국민을 속이려는 사기극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는 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해 있는 혁신도시의 공공기관 직원들 중엔 이산가족의 불편과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혁신도시로 이사를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교육 문제다. <입시가족: 중산층 가족의 입시사용법>이란 책이 잘 지적했듯이, “중산층 가족 사이에서 자녀교육의 동의어는 ‘인서울 대학’ 진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장서서 인서울 대학에 재정지원을 집중하고 있는 정부가 감히 그들에게 가족 동반 이주를 권할 수 있겠는가? 입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면서 인구 집중의 강력한 유인인 교육정책은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 이건 사기극이다.
그런데 이 사기극의 구조가 간단치 않다. 지방도 ‘공범’으로 적극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은 서울로 학생들을 많이 보내는 걸 ‘인재육성’이라는 미명하에 지역발전전략으로 삼고 있다. 공적인 장학재단을 통해 서울대 진학자에게는 1500만원, 고려대·연세대 진학자에게는 1천만원을 주는 곳까지 있다. 급기야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이런 장학사업이 ‘학벌에 따라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이라며 개선을 권고했지만, 지방에선 이런 일들이 민관 합동으로 광범위하게 추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는 지방에 살망정 내 자식은 인서울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학부모들의 열망은 가족 차원에선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이런 열망이 지방정부와 지방민의 공적 태도마저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해 ‘3기 수도권 신도시’ 건설에 이어 ‘수도권 광역교통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일산과 남양주에서 서울역, 송도에서 여의도, 동탄에서 강남역까지 모두 30분대에 도달할 수 있는 꿈같은 비전이다. 지방소멸이 임박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서울의 부동산 문제를 수도권 비대화 전략으로 풀겠다는 정부의 근시안적 정략에 대해 지방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교육재정의 서울 집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내심 환영하는 사람도 많다. 자식을 서울로 보냈으니 서울의 주거 여건이 개선되고, 서울에 부와 권력이 더 집중되는 게 좋다는 논리다.
소를 길들이기 위해 소의 코청을 꿰뚫어 끼는 나무 고리를 코뚜레라고 한다. 인서울 대학은 그런 코뚜레 역할을 기가 막히게 잘해내고 있다. 지방 스스로 지방을 죽이게끔 만드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코뚜레는 국민의 평등권을 유린하는 지리적 약탈체제의 수호신이다. 사기극으로 전락한 국가균형발전, 차라리 이걸 쓰레기통에 내던지는 게 집단적 위선과 기만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선 국민의 정신 건강에 훨씬 더 좋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