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 ㅣ <아이돌로지> 편집장
미국에서 인종차별 반대운동이 거세지면서 음악계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일은 세계 대중음악계 대부분의 기업이 하루 동안 업무를 중단하는 ‘블랙아웃 튜즈데이’로 선포됐다. 인종과 국적을 막론한 아티스트들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를 사회관계망 등을 통해 공개 발언 하며 관련 단체 기부 등의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케이팝에서도 이미 유수의 아티스트가 이 흐름에 동참했다. 케이팝 아티스트들에게 지지 발언 및 기부를 요청하는 메시지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기도 하다.
이를 둘러싸고 불만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대중연예인에게 정치적 사안에 대한 발언을 요구하는 일은 부담스럽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사실 한국 대중음악계는 다소 특수성이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 이유로 대중음악이 거의 말살되다시피 한 전력이 있고, 이후에도 일본이나 중국과의 외교 문제로 케이팝 산업 자체가 뒤흔들린 사례들이 있다. 트라우마라 해도 좋겠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모든 사안에 사뭇 안전지향적으로 입을 다무는 성향도 있다. 일례로 2016년 미국 올랜도의 성소수자 클럽 총기난사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세계인이 무지개 하트를 상징 삼아 피해자들과 연대를 표했다. 케이팝 아티스트들도 상당수 동참했는데, 이들의 게시물 대다수가 곧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결정인지 기획사의 방침인지 주위의 만류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만큼 한국 연예계에서 ‘정치는 침묵’이 최선으로 받아들여지는 성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 요청이 부당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흑인 인권에 관해 백인 아티스트는 제쳐두고 아시아인에게 폭력적인 수준의 강요를 한다는 것이다. 흑인(음악)에게서 비롯된 음악을 하므로 책임이 있다는 주장 등은 연대 요구의 근거로서 논쟁의 여지가 있겠다. ‘사상 검증’에 가깝게 의사 표명을 강요한다면 이 역시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소중한 아티스트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팬 및 관계자 입장에서 ‘너무한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음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처럼 도가 지나친 요구나 언사는 개별 사안으로 논의해 마땅하다. 연대를 요청하는 이들 중 난폭한 이가 있다고 해서 연대 요청 그 자체가 부당한 것이 되지는 않는다.
세계 무대에서 케이팝은 이미 정치 그 자체다. 미국에서는 경찰의 제보 창구나 통신망에 케이팝을 대량으로 쏟아부어 시위 진압을 방해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문외한에게 한없이 황당한 게 케이팝이란 점을 이용한 것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시위 지지층에 케이팝과 친숙한 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의미도 된다. 국내 지상파 방송이 아무리 금발 백인 여성 관객을 집중적으로 찾아 비춘다 한들 케이팝 열풍의 몸통은 인종적, 성적 소수자들이었다. 특히 지금 케이팝의 부상이 다양성이란 가치와 무관하지 않음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트럼프 집권 직후 미국의 인종주의적 분위기와 이에 대한 문화계의 반발이 아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고, 그 과정에서 케이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결국 케이팝이 더는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케이팝이 흑인음악에 빚진 것을 정치로 갚을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케이팝이 세계에 정치로 빚진 것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타인에게 정치적 행동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때로 세상은 사람을 정치 앞에 데려다 놓는다. 지금 케이팝이 그렇다. 아티스트와 팬 모두에게 전향적인 사고가 필요한 시점일지 모른다. 적어도 이 기회에 케이팝과 정치적 표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용기 있는 한 발을 내디딘 아티스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