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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불체포 특권과 체포동의안 / 신승근

등록 2020-06-01 18:11수정 2020-06-02 02:39

2003년 12월30일 본회의. 4대 그룹에서 돈뭉치가 든 사과 상자를 받은 ‘차떼기’를 주도한 혐의로 최돈웅(한나라당), 청탁과 함께 4억원을 받은 혐의로 정대철(열린우리당) 등 여야 의원 7명의 체포동의안이 일괄 상정됐다. 여론이 들끓자 여야는 마지못해 한꺼번에 찬반을 묻는 ‘연기명식 무기명 투표’를 했다. 이탈표를 줄이려는 꼼수에 의원들은 끈끈한 동업자 의식을 발휘했고, 7건 모두 부결시켰다. 여야 지도부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그뿐이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헌법 제44조 1항)는 불체포 특권은 역사가 길다. 1543년 영국에서 채무보증을 한 의원을 왕실재판소가 체포하자 의회가 석방을 요구하며 불체포 특권을 요구했고, 1603년 ‘의회 특권법’에 아예 명문화했다. 이후 불체포 특권은 전 세계로 확산했다. 우리도 1948년 제헌의회에서 관련 규정을 만든 뒤 9차례 개헌에도 변함없이 존속했다.

최고 권력자가 의회를 겁박하는 걸 막으려는 장치였지만 많은 경우 비리 의원 감싸기에 활용됐다. 제헌의회 이후 현재까지 모두 57건의 체포동의안이 제출됐지만 국회는 13건만 가결했다. 16건은 부결했고, 철회 3건, 표결도 않고 폐기한 것도 25건에 이른다. 20대 국회에서도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홍문종·염동열 의원(자유한국당)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부결됐고, 같은 당 최경환·이우현 의원 체포동의안은 임시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수사 당국은 국회 비회기 때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직접 검거에 나서기도 했지만 그 성과는 미진했다. 회기를 연장하는 ‘방탄국회’로 감싸고, 당사 등으로 몸을 숨기도록 당 지도부가 도왔기 때문이다. 1998~99년 불법 대선 자금에 연루된 서상목·이신행 의원(한나라당)은 방탄국회로 체포영장을 피한 대표적 사례다. 1999년 명예훼손 혐의로 23차례나 검찰의 소환통보를 받은 정형근 의원(한나라당)은 검찰이 집으로 들이닥치자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버티다 당사로 피신했다.

특권을 내려놓고 일하는 국회가 되겠다고 약속한 21대 국회에선 불체포 특권 뒤에 숨거나 방탄국회로 제 식구를 감싸는 악습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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