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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QR코드의 영토 확장 / 김영배

등록 2020-05-26 16:56수정 2020-05-27 02:44

국립국어원이 2011년 큐아르(QR)코드 대신 쓸 우리말 순화어로 뽑은 것은 ‘정보무늬’였다. ‘격자무늬 그림으로, 많은 정보를 나타내는 2차원 바코드’란 뜻을 담아내기에 더없이 좋은 말그릇이었던 듯한데,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겉모양으로는 정보무늬인 큐아르코드의 속내용은 ‘정보창고’라 부를 정도로 방대한 수용량을 자랑한다. ‘버전 40’을 기준으로 할 때 데이터로 환산한 정보 수용량이 숫자 7천개, 영문 문자 4천개, 한글 문자 3천개가량이라고 한다. 1차원의 바코드는 글자와 숫자를 합해 20개 정도의 정보를 넣을 수 있을 뿐이라 하니 비교할 수 없는 격차다.

큐아르코드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4년, 창안자는 도요타자동차 자회사인 덴소의 개발팀이었다. 자동차 부품 공급 업체인 덴소가 큐아르코드를 개발한 본래 목적은 도요타차 전용 열쇠와 부품을 구별해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기존 바코드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아낼 뿐 아니라 감지기를 통한 인식 속도 또한 10배쯤 빨라 ‘Quick Response’(퀵 리스폰스: 빠른 반응)라는 이름을 얻었다.

덴소는 처음부터 큐아르코드에 대한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약속을 지켰다. 국경을 넘어 널리 퍼지고 1997년 국제자동인식공업회(AIM), 2000년 국제표준화기구(ISO) 표준으로 인정된 배경의 하나다. 사용 지역뿐 아니라 용도 또한 급팽창했다. 큐아르코드 인식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 보급이 날개를 달아줬다. 부품공장이나 배송센터를 넘어 모바일 쿠폰, 광고, 마케팅, 전자티켓, 공항 발권시스템, 개인 명함에도 활용되고 있다. 지에스(GS)25, 이마트에서 선보이고 있는 무인점포도 큐아르코드에 기대고 있다.

선거 관리에까지 큐아르코드가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6월 지방선거 때부터였다. 사전투표 용지 하단에 인쇄된 큐아르코드에는 일련번호, 선거명, 선거구, 관할 선관위 같은 정보가 담겨 있다. 유권자 개인 정보는 당연히 없음에도 부정선거 음모론을 일으키는 빌미가 되곤 한다. 올해 4월 총선 뒤에도 야당 의원과 보수단체 쪽에서 불법선거 증거로 큐아르코드를 거론했다. 해묵은 음모론이며 낭설이다. 이전의 비슷한 주장에 대해 2017년, 2018년 두 차례나 허위라는 법원 판결이 났다.

큐아르코드가 코로나19 대응에도 쓰이게 됐다. 정부가 클럽이나 주점 같은 유흥시설을 대상으로 큐아르코드를 활용하는 전자출입명부 제도를 6월에 도입하기로 했다. 출입자 명부를 거짓으로 적어내는 시설 이용자가 많아 역학조사를 하기 어렵다는 사정에서 비롯됐다.

전자출입명부제는 시설 이용자가 네이버 등에서 큐아르코드를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제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름과 전화번호 같은 개인정보는 큐아르코드 발급회사로, 시설 정보와 방문 기록은 공공기관인 사회보장정보원으로 나뉘어 전송된다고 한다. 관리 주체의 이원화는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을 막기 위한 것이라 한다. 아직 사생활 침해 시비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큐아르코드의 ‘빠른 반응’에 바탕을 둔 코로나 대응의 신속성에 대한 열망이 더 큰 모양이다.

김영배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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