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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신뢰에 목마른 사람들

등록 2020-05-24 18:21수정 2020-05-25 13:22

지역엔 공론장이 없다. 광장이 없다. 연고와 이해관계 중심으로 파편화된 공간은 무수히 많지만, 연고 없이, 사심 없이 지역에 대해 떠들 수 있는 마당은 없다. 그런데 놀랍고도 흥미로운 건 그런 마당 역할을 해보겠다고 시도하는 지역언론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걸핏하면 인력과 돈 탓을 하지만, 아니 마당쇠 노릇을 하라는데 왜 그런 엉뚱한 이유를 대는 걸까?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미국의 온라인 생활정보 사이트 크레이그리스트에 대해 좋은 말을 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언론의 이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말이다. 크레이그리스트는 구인광고와 일부 지역의 부동산 광고에만 돈을 받을 뿐 주로 무료 서비스로 운영되는데, 바로 이게 지역신문엔 재앙이 되었다. 크레이그리스트가 지역신문사 수입의 40%, 수익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노른자위 수입원이었던 생활광고를 가져가는 바람에 지역신문들은 파산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여러 지역신문이 경쟁하던 미국의 웬만한 도시에 이제 지역신문은 달랑 1개만 존재한다. 그러니 어찌 크레이그리스트에 대해 좋은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 크레이그리스트의 어떤 점을 배울 것인가? 우선 자세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 신문들은 1990년대 초반 크레이그리스트와 비슷한 지역 생활정보지들의 돌풍에 노른자위 광고 수입원을 다 빼앗긴 뒤에도 배운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생활정보지 범죄 악용 많다” “생활정보지 과당경쟁 부작용 많다” “유해 광고 여과 없이 게재, 독자 ‘정보공해’에 시달려” 등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을 통해 불편한 심기만 드러냈을 뿐 달라진 세상의 문법에 적응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자세론 곤란하다. 우선 목에서 힘을 빼야 한다. 목에 힘주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지역신문에 집중해 말하자면, 지역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봉사자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희생하라는 뜻이 아니다. 떳떳하게 먹고살기 위해서다. 그런 절박함이 있을 때에 비로소 지역의 문제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서울공화국’ 체제의 1극 구조로 인해 지역민들의 관심을 서울에 빼앗긴 가운데 지역 이슈들이 서울 이슈들에 압도당하는 현실을 넘어설 출구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엔 공론장이 없다. 광장이 없다. 연고와 이해관계 중심으로 파편화된 공간은 무수히 많지만, 연고 없이, 사심 없이 지역에 대해 떠들 수 있는 마당은 없다. 그런데 놀랍고도 흥미로운 건 그런 마당 역할을 해보겠다고 시도하는 지역언론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걸핏하면 인력과 돈 탓을 하지만, 아니 마당쇠 노릇을 하라는데 왜 그런 엉뚱한 이유를 대는 걸까? 모든 걸 자신들이 직접 해야 한다고 믿는, 디지털 혁명 이전의 낡은 사고방식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크레이그리스트의 성공 비결은 ‘판 깔아주기’였다. 지역민들이 사이트에 방문해 마음껏 놀 수 있게끔 간섭하지 않고, 그냥 믿어주는 것이었다. 창업자인 크레이그 뉴마크는 ‘신뢰야말로 새로운 유행’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전혀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제가 한 거라곤 멀찌감치 떨어져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본 게 전부입니다.” 지역민들은 이 사이트에 강한 신뢰와 애착을 가졌다. 예컨대, 어느 지역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사도 회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가구와 여러가지 물품을 기증받았고 그들을 통해 구입한 물건도 몇개 있다. 사람들은 내게 많은 걸 추천해주었고 무수한 질문에 응답해주었다. 요즘엔 하루에도 몇번씩 크레이그리스트를 확인한다. 마약에 중독되듯 이곳에 중독된 게 분명하다.”(<위 제너레이션> 참고)

이런 ‘판 깔아주기’는 언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부터 바꾸라고 말하고 싶다. 지역에 관심과 애정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취재의 주요 공간으로 여기지 않고, 관(官) 중심의 출입처에서만 정보를 얻겠다니 그게 말이 되나. 그래서 ‘공무원 언론’이란 말을 듣는 게 아닌가. 정작 문제는 판을 깔아주는 주체에 대한 신뢰다. 사람들은 신뢰가 없는 곳엔 모여들지 않는 법이다. 지금 지역언론에 그런 신뢰가 있는가?

언론을 향해 신뢰를 강조하면 의외로 신뢰를 돈벌이와는 무관한 ‘도덕’으로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성공한 자영업자나 기업가들을 만나보라. 파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채 돈을 벌 수 있느냐고 말이다. 신뢰라고 해서 많은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열망과 실천의지에 대한 믿음을 갖게끔 하는 수준이면 족하다. 지역엔 신뢰에 목마른 사람이 많다. 연고와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지역의 삶에 대해 마음껏 수다를 떨면서 서로 믿을 수 있는 유대를 맺고 싶어 하는 이가 많다. 지역을 사랑하고 싶어도 그 사랑을 음미하고 실천할 수 있는 마당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일을 지역언론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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