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분희 ㅣ 월성원전 인근지역 거주민(34년째)
나는 월성원전에서 1.2㎞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73살 할머니이다. 일반인이 출입, 거주할 수 없는 월성원전의 제한구역에서는 불과 300m 떨어진 거리에 살고 있다. 집 앞에서 원전이 보인다. 1986년 8월 이곳으로 이사 왔다. 남편이 13년 회사생활 하는 동안 먹는 거 입는 거 아껴서 모은 돈으로 조그만 농장을 샀다. 그때 울산에서 월성원전 인근까지 약 30㎞가 비포장도로였다. 세 바퀴 용달차에 이삿짐을 싣고 세 아이 손을 잡고 이사 오던 날 막내 나이 겨우 6살, 나는 39살이었다. 계절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다. 아이들 셋 다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했다. 내 자식을 이곳에서 키웠듯이 내 손자 손녀들도 여기서 돌봐주며 욕심부리지 않고 내 손으로 농사지은 먹거리 먹이면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겠다는 희망으로 행복했다.
그러는 사이 집 앞에 원전이 하나둘 늘어났다. 내가 이사 올 때만 해도 월성1호기 하나였고, 주민들은 원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전기를 만드는 공장인가 보다 했다. 원전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은 지역상생을 말했고, 잘사는 동네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주민들은 원전이 안전하고 값싸고 좋은 거라는 한수원의 말을 믿었다. 왜냐하면 주민들에게 원전이라는 거대 기술을 담당하는 한수원은 또 다른 국가였고, 정부였다. 정부가, 한수원이 왜 국민을 속이겠는가, 그때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농지와 집들이 원전 부지로 수용당해 농사지을 땅이 없어져도, 원전이 6개나 밀집해도 나랏일이라 여기며 별다른 군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원전 짝퉁 부품 사건, 5년이나 감추어온 월성1호기 핵연료봉 교체 과정에서 폐연료봉 다발이 떨어져 방사능이 유출된 사건들이 터져 나오며 주민들의 원전에 대한 불신이 커져갔다. 이런 과정에서 방사능은 얼마나 많이 나왔을까 주민들은 불안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2012년에 나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고 1년 뒤 수술을 받게 되었다. 가족력도 없는데 암에 걸린 것이다. 갑상선암은 특히 방사능이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들었다. 그리고 원전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아도 늘 방사능이 밖으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웃 주민들도 갑상선암 환자들이 많아서 2015년 우리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삼중수소 내부피폭 검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주민 40명의 소변 검사를 하였다. 5살 아이부터 80살 노인까지 포함되었다. 또 우리 부부와 딸과 사위, 손자 손녀까지 포함되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괜찮겠지, 괜찮아야지. 결과를 기다리는 2개월을 20년과 같이 보내고 검사지를 받아 든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주민 40명 모두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 내부피폭.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고, 더 큰 충격은 만 4살인 내 손자의 조그마한 몸속에 방사능이 있다는 것이었다.(당시 환경운동연합은 “삼중수소는 장기 노출 때 백혈병이나 암 유발 위험이 있다고 국제 논문 등에서 보고”되고 “어린아이로 갈수록 더 민감하다”고 밝혔다. 삼중수소는 일반인들에겐 검출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수원에 이 사실을 알리고 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으니 이주를 시켜달라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이주를 시켜줄 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월성1호기가 중단된 뒤 2020년 1월 다시 삼중수소 내부피폭 검사를 했는데, 1호기가 가동할 때 비해서 방사능 수치가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월성1호기는 그대로 멈춰야 한다. 요즘 월성1호기 재가동하자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나마 월성1호기 중단으로 사용후핵연료가 덜 나오고 있지 않은가. 10만년을 관리해야 하는 핵폐기물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월성1호기뿐만 아니라 국내 원전에서도 특히 방사능과 사용후핵연료를 많이 배출하는 월성 2, 3, 4호기는 중단해놓고 고준위 핵폐기물 보관 방법을 논의해야 순서가 맞다. (이 글은 황분희 할머니가 일기를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김영희 대표에게 보내 정리된 것으로, 전문용어나 압축 등을 빼곤 일기 원문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