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떨리는 가슴으로 1만번째 한겨레신문, 10000호 한겨레를 발행합니다. 마침 5·18 민주화운동 40년을 맞는 날입니다.
7만 국민주주들께 먼저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32년 전 참된 언론 만들자고 호주머니를 털었던 국민주주들이야말로 한겨레 1만호의 진정한 뿌리입니다. 국민주주들의 염원이 모여 세계에서도 전례 없는 국민주주 언론사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한겨레가 태생부터 사회적 자산이고, 공공재 언론이란 디엔에이(DNA)를 탯줄에 각인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유입니다.
독자들께 감사드리면서 성찰하겠다는 말씀 올립니다. 우리가 비판하던 기득권 언론의 행태를 우리 스스로 닮아가고 있지 않은지, 약한 이들의 소리에 멀어지고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는 않았는지, 뼈아프게 돌아보겠습니다. 한겨레가 겸손한 언론의 대명사로, 다시 주주와 독자들의 한결같은 자랑거리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한겨레신문의 초창기 판매 지국장들은 자기 재산을 털어 전국 배달망 개척에 나섰던 분들입니다. 그 헌신 새기겠습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언론’이란 한겨레의 사명을 지지해준 기업 광고주들께도 감사하는 마음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험하고 어려울수록 더 빛을 발했습니다. 코로나19 위기로 우리 모두가 엄혹한 상황을 맞은 이때에, 우리는 또 다른 1만호를 향한 전진의 길에 나서고자 합니다. 초불신 초연결 시대에 ‘신뢰의 연결’로 한겨레 르네상스를 열겠습니다. 이는 진실과 평화라는, 한겨레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두 핵심 가치를 꽃피우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나마 한겨레”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넘어, “그래 한겨레”라는 진정한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나아가겠습니다.
저희는 며칠 전 새로 보완한 한겨레 취재보도 준칙과 수사·재판보도 세칙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 준칙과 세칙은 오로지 진실을 추구하는 고품격 신뢰언론 한겨레의 길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이제 한겨레 보도의 작은 허물이라도 독자와 취재원의 입장에서 정직하게 인정하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지키는 일부터 실천하겠습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가디언 같은 세계적 정론지들은 “정정보도와 사과를 잘한다”는 것을 큰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기레기 언론과 가짜 뉴스가 판치는 대한민국 언론 지형에서 한겨레가 이 길을 먼저 걸어가겠습니다.
한겨레는 32년 전 창간사에서 “결코 어느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독립된 입장 즉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보도하고 논평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이제 정치 진영 간의 고질적인 갈등의 시대를 극복하는 길을 열어가겠습니다. 대결의 시대를 넘어 기후변화, 젠더, 불평등 같은 다층적인 평화 의제를 지속적으로 확산시키고, 세상을 더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실질적인 대안을 찾아나가겠습니다.
본격적인 방송에 도전하는 꿈도 꿉니다. 신문-디지털-방송을 망라해 건강한 진보의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 지금 시대 한겨레의 소임이기 때문입니다. 고품격 신뢰언론을 개척해, ‘한겨레 방송’을 지지하는 뜻있는 국민들의 염원을 모아낼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한겨레의 창간 스승인 고 리영희 선생은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가슴 깊이 새깁니다.
2020년 5월15일
대표이사 발행인 김현대